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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Sep 12. 2024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벌인가

더위와는 상관없이 이미 자연은 가을의 문턱에 서 있네요. 달력은 이미 처서를 지났고, 나뭇잎들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체감하는 계절은 여전히 한여름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네요. 밤새 식지 않는 열대야, 낮의 불볕더위. 이 모순된 날씨 속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어컨에 전기세의 부담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전원을 끌 수 없는 이 마음은 저뿐만이 아닌 거 같아요.


여름을 보내지 못하는 이 마음이 미련일까요, 아니면 후회일까요?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리며 잠시 망설였어요. 종이컵을 쓸까, 머그잔을 쓸까. 작은 선택이지만, 이런 순간의 편리함이 모여 지금의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닐까요? 결국 머그잔을 선택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어요. 나 혼자라도 조금씩 변화하면 군중심리로 퍼져서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창밖을 바라보니 나무들이 보여요. 이 극심한 더위 속에서도 나무들은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네요. 뿌리로 물을 빨아올리고, 잎으로 광합성을 하며, 새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어요. 나무는 우리에게 참 많은 가르침을 줘요.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코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는 모습에 놀라요. 이 모습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해요.



우리는 편리함을 쫓아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나무들의 이 변함없는 모습이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주고 있어요.




우리나라만큼 화장실에 비데가 많이 설치된 나라가 또 있을까요? 비데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급격했는지 알 수 있어요.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수입된 비데는 처음에는 호텔이나 고급 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품이었어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산 제품이 보급되면서 빠르게 대중화되었죠. 이제는 공공화장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어요. 아이들이 비데 없는 곳에서 볼 일을 보지 못하고 있고, 어른들도 비데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을 구분하고 있더라고요.



불과 30여 년 만에 일어난 이 변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편리함을 추구해 왔는지 보여줘요. 화장지 사용량을 줄이고 개인위생을 개선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물과 전기 사용량 증가라는 환경적 비용도 발생하고 있어요.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빨리 편리함을 추구해 왔어요. 그 대가로 자연이 우리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요?


문득 국민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선풍기 없는 교실에서 부채질하며 수업을 들었던 그때. 지금 내 아이들은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카디건을 챙겨 학교에 가고 있어요.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렇게나 달라졌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걱정돼요. 더위도 추위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앞으로의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우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더 가혹한 자연환경을 물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끔은 눈감고 사색에 잠겨요.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가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연이 우리를 용서해 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네요.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가 불편함을 자처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까요?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작은 선택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어요.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우리가 추구해 온 편리함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비데의 역사가 보여주듯, 우리는 빠르게 변화할 수 있어요. 이제는 그 변화의 방향을 환경과 미래를 위해 조정할 때인 거 같아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 그리고 변화를 위한 작은 실천만이 남아있네요. 그것이 우리가 자연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창밖의 나무들처럼, 우리도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의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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