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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May 21. 2020

친한 길들이 서로 만나는 곳

연대의 의미, 함께 가는것.

내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내가 무척이나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상 포스팅에는 매번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고 맛집 포스팅도 주기적으로 올리는 편이라 만남이 꽤 잦아 보이기는 한다. 그리고 매일 어떤 이야기든지 생산한다는 것이 에너지가 꽤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가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오랜 시간 지켜온 만남의 법칙 아닌 법칙이 있다. 외부로 방출하는 에너지와 내부로 충전하는 에너지의 비율은 정확히 1:1로 지키는 것이다. 가령 월요일에 외부활동이 있었다면 화요일은 집안일도 하며 잔잔하게 쉴 것! 월화 연속으로 약속이 있었다면 수목은 집에 있을 것, 이런 식으로 나의 에너지수준을 적정량으로 관리해왔다. 그러다보니 체력적 안배도 잘 돼서 아플 일도 잘 없고 집에 있는 날에는 책을 보면서 생각을 정돈하고 글도 쓰고 여러 가지로 내부에서 즐거운 일이 작은 축제처럼 퐁퐁 터지는 것이다.  

이런 대내외 활동이 블로그에 고스란히 옮겨지면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요한 법칙이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휴직을 하고 이런 저런 활동에 기웃거리다보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나보다 무언가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질투도 하느라 약속 없이 집에서 쉬는 날에도 내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충전하는 대신 여전히 다른 이들의 삶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나는 나의 속도대로 흔들림 없이 살았고 특별히 다른 이에게 영향을 받거나 비교하면서 나를 갉아먹는 소모를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만날수록 나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고 그럴싸한 크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들고 서로 지지하는 모습이 부러웠고 혼자서도 꾸준히 해온 블로그에 눌려지는 빨간 공감하트의 개수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누가 내 블로그에 공감을 누르고 누르지 않는지 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이 부러운 것일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함께 모이고 공감하고 격려하고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게 아니어도 연대를 이룬 사람들이 보기 좋았다. 그러던 중에 ‘블랙독’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또한 생각을 정리했다. 드라마 ‘블랙독’은 기간제 교사가 된 사회 초년생 여주인공이 우리 삶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꿈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기간제 교사들끼리의 연대, 정규직 교사들의 연대의 모습이 비쳐지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그들의 연대가 진정한 의미의 연대인지 의문도 들었다. 사실 그 ‘연대’는 자발적으로 그들의 뜻에 따라 모인 것이 아닌,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선’에 의해 타의적으로 갈라진 양분화가 아닐까 싶었다.


30대 후반,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 지금은 휴직중인 워킹맘 반 전업맘 반인 나의 위치. 나는 누구와 ‘연대’하고 싶고 무엇을 위한 ‘크루’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나에게 특별한 목적과 이유는 사실 없었다. 단지 모여 있는 것이 부러웠고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데미안/민음사p182]


나는 어쩌면 현재 휴직자로서 직장에서 잊혀 질 것 같은 불안함과 전업맘의 역할에 따른 부담감 사이를 오가며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데미안의 말처럼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제껏 정립해 온 삶의 법칙들이 조금씩 낡은 목록이 되어가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고 누군가와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또한 결국 불완전한 연대가 될 수밖에 없는데 마찬가지의 이유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연대속에서도 불안할 것이고 나만의 삶의 법칙을 리뉴얼 하지 않으면 여전히 낡은 목록에 따라 흔들리고 있을 터였다.


휴직을 하면서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함께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흔들림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발전이란 흔들림 뒤에 나만의 속도를 찾아 다시 안정을 이루고 새로운 법칙들이 세워질 때 조금씩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불완전한 연대가 될 수도 있지만 에바부인이 싱클레어에게 얘기했듯 ‘친한 길들이 서로 만나는 곳, 거기서는 온 세계가 잠깐 고향처럼 보이는’ 바로 이 친한 길들에서 잠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친한 길들’에 계속 머물고 싶어지는 마음을 잘 달래서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 관건이겠다. 


휴직중이라는 것이 그 이름과 다르게 참 여러모로 조급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직을 쉬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 이유가 다양하기에 다양한 이유에 걸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채무감이 드는 것이다. 육아와 집안일이 대표적이고 나의 직업에 대한 고민과 준비, 노후에 대한 계획까지 지금이 아니면 여유있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무엇이든 서둘러 결론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알게 되면 그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안정감을 찾고 그 자리에 천막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고. ‘데미안’은 청소년 성장소설인줄 알았는데 30대 후반에도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는 책일줄이야. 알은 진즉에 깨고 나와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안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도피하는 모습을 나 역시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고 다시 기운을 차리며 나아가는 게 또한 모두의 과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감사한 일이다. 


결국 연대란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과정이므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그 불완전함은 전혀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 나의 불완전함, 연대를 향한 부러움 역시 나만의 속도로 다시 터벅터벅 나아가므로 극복할 수 있고 또는 친한 길들이 만나는 길목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며 쉬어갈 수 도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  


이렇게 독서로, 드라마로 나만의 글쓰기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속도를 만들어 가는 일과 속에서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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