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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Feb 21. 2020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성장은 나선형의 과정

휴직을 하면 이것을 해봐야지, 저것도 해봐야지 하는 계획을 세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휴직을 하면서는 그런 계획이 그다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아껴 써야 하는 시기였고 일할 때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공부가 힘들었으니 올해는 내 공부, 아이 공부에만 집중해야지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공부에 가장 오랜 시간을 쏟았음에도 만족할만한 성취감을 얻지 못했다. 자격증이 주는 만족은 일시적일 뿐이었고 그것을 활용해서 연계되는 활동과 교류를 해야 효용이 지속될 텐데 휴직 중이다 보니 일과 관련된 것은 딱히 무엇을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러 다양한 활동과 도전을 거치며 상당한 배움을 얻었고 좀 더 나은 나를 발견했으나 결국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모습은 38년을 살아온 내 방식대로 내면에 집중하며 조용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었다. 


결국 혼자인 나로 돌아오는 건가?


그 많은 다양한 도전들이 그냥 허튼짓이 되어 역시 ‘하던 대로 살아’로 돌아오는 것인가, 인간의 관성이란 이토록 무섭고 나 역시도 달팽이 껍데기 속으로 다시 숨어 들어가는 것인가? 나약한 푸념을 하며 햇살을 받으며 거실에 누워 있었다.   


내면의 생각은 어쩌면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는데 나는 사실 매우 편안했다

내 호흡을 느끼며 나의 시간표대로 흘러가는 이 시간의 주인이 된 듯했고 휴직해서 집안에 누워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사치인지 알고 있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익숙한 내 공간에서 차가운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받는 일이 뭐가 어때서 자책하는가? 하는 마음이 한 구석에 어쩌면 더 크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은 나선형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그 산을 올라간다면 우리는 똑같은 경치를 몇 번씩이나 감상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고도는 매번 약간씩 달라질 것이다. “여긴 전에 와봤는데.” 우리는 한바탕 갈증을 느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거기 왔던 것이 사실이다. 길은 결코 곧게 뻗어 있지 않다. 성장이란 왔던 길을 겹쳐 밟으며 재평가하고 재편성하는 나선형의 과정이다. [아티스트 웨이 p340]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매일의 일상이 모여 조금씩 나아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는데 나선형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늘 같은 경치를 보게 되는 순간이 오면 꽤 낙담할 것 같은데 길 자체가 곧게 뻗어 있지 않아 오르는 길이 원래 그렇다면? 길을 잃은 것 같지만 그것은 착시일 뿐 뚝심 있게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믿고 걷는다면? 같은 경치라도 새롭게 볼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여유가 생길 것 같다. 




아끼던 후배의 SNS에서는 사진으로만 봐도 습한 기운이 느껴지고 나까지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은 기후의 베트남 어느 시골에서의 일상이 가득했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며 늘 별일 없는 무료한 곳에서의 일상들이 얼마나 힘들까? 그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찾으려는 아이의 노력이 보여 마음이 쓰였다. 기쁘게도 잠시 한국에 나온다는 소식에 나와 두 명의 친구는 함께 자리를 마련했고 잠시 방문하는 한국에서 그곳에서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을 가득 안겨줘야지, 마음이 바빴다. 그 마음은 나만이 아니었는데 그 아이를 위한 계획에 잔뜩 부푼 우리의 기대와 설렘을 후배는 작은 바늘로 단번에 콕 찔러 바람을 빼버렸다.


“나는 너무 지쳤어요. 여기 오면 행복한 일이 가득해서 나의 힘듦을 다 보상해 줄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요. 여기도 그냥 똑같네요.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기운 없는 후배의 말에 우리는 백 마디 천 마디를 보태서 우리가 보상해주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싶었으나 그 얼굴이 너무 지쳐 보였고 우리가 뭐라고 단번에 그 아이의 기분을 바꾸겠는가 하는 쓸쓸한 마음이 생겼다. 


“네 마음을 이해해. 마음이 많이 강퍅해졌구나. 그런데 이대로 돌아가면 네가 굳어진 마음 그대로 ‘너희는 아무것도 몰라’라는 태도를 갖게 될까 걱정이 돼. 우리가 늘 경계했던 자신의 세계만이 옳다고 믿는?”




나는 후배의 마음을 정말 이해했다고 믿었던 걸까? 네 마음을 이해하긴 뭘 이해했다는 걸까? 그 당시 나는 꼭 필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는 저 문장은 어떤 말보다 아픈 곳을 명중해 더욱 쓰라리게 후벼 파는 날카로운 말이었다. 이미 넌 그런 사람이야.라고 도장을 찍어 버린 말이었다. 이후로 ‘너를 믿지 못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습한 열기가 보이는 SNS 사진을 보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아이와 동행해야 할지 한참 동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 느낌."



그 후배는 베트남으로 다시 갔고 그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같은 풍경이어도 지금의 그녀는 겹쳐 온 길을 밟으며 자신만의 다른 이야기를 쌓아 분명 그 여름의 같은 내면을 갖고 있지 않겠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의 세상에서 나와 애쓴 내가 다시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해서 이전의 나로 완전히 돌아온 게 아니듯.



내 일상을 인정하고 나의 편안함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타인의 삶에 내가 무슨 자격으로 관여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때로는 이런 생각이 나를 무관심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나친 참견이 관심과 애정이 아니듯 믿어주는 것이 무관심은 아닌데 이 둘 사이 적정한 거리를 찾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나는 내 인생을 응원해. 

나는 너의 인생을 응원해.


나의 속도와 방식에 편안함을 느끼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할 거야.

너의 속도와 방법을 존중하며 네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



메시지는 이렇게 심플한데 이 내용이 내 삶에서 묻어나게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빙빙 돌아가는 나선형 계단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어 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도 맥없이 울고 싶은 순간, 남의 자리를 보면서도 어쩌지 못해 울고 싶은 순간.

그래도 다행이라며. 빙빙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역시 오르는 길이었다니. 

나아가는 과정의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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