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Sep 06. 2019

요게벳의 노래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표적 항암을 맞고 감기약도 새로 짓고 링거도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였다.
요즘 한참 빠져 듣는 장범준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졌다는 그 노래.
흔들리는 꽃 같은 건 없는 사당역에서 느닷없이 예전 어느 날이 생각났던걸 보니,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샴푸 향이 난다는 노래만 한없이 듣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다른 노래가 끼어들었다.
그냥 들었다.
요게벳의 노래라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들었다.
그냥 듣다가,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울고 정류장에 내려 하염없이 울었다.

요게벳.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모세의 엄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모두 죽여야 했던 시기에 출산을 하여, 아기를 역청 바른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낸 여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인데, 아기를 떠나보내는 엄마의 관점은 처음이었다.

문득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드라마나 영화 속 같은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다.
눈도 뜨지 못하시고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기계를 통해 아빠의 숨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순간, 하여 마지막 순간의 유언이라는 게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노래를 듣다가 문득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아빠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아빠는 내 인생 가장 큰 나무였다.
큰 나무였고 든든한 언덕이셨으며, 인생길의 등불이셨다.
아빠를 현충원에 모시던 날, 고아랑 과부는 하나님이 돌봐주실 테니 우리 걱정일랑 하지 마시고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시라 인사드렸는데, 아마 아빠도 숨 떠나시던 그 순간 신께 저런 기도를 하셨을 것 같다.
내 딸을 맡기노라고.
떠나는 나 대신 내 딸을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라고.
아니, 그러셨을 거다.
아빠는 그런 분이셨으니까..

아까의 일이 떠올라 잠든 아이 옆에서 저 노래를 또다시 하염없이 들었다.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11차가 있는 날이었다.
해열제로도 잡히지 않던 아이의 열이 드디어 떨어졌고, 약이 안 들어 고생이었던 내 목감기도 드디어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https://youtu.be/knI6bsXeg2U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면서 큰다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