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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3. 2020

전염병의 순기능

대환장 파티-코로나 19

구로 콜센터 확진자 중 한 명이 제주도에 다녀갔다며, 그의 동선이 티브이 화면에 떠 있던 중이었다.
동선 중에 유독 눈에 익은 지명이 보였다.
함덕
그곳에 고등학교 동창이 산다.
초등학교도 22일까지 휴교이니, 아이 둘을 데리고 집 안에서 씨름을 하고 있을 테다.
학교 운동장에서 한라산이 보이고 집 앞에 바다가 있지만, 과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으려나. 한창 에너지가 넘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고생하고 있을 친구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사실 나는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는 류의 사람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데 오지랖은 무슨.
옆집의 밥그릇 숟가락 숫자는 고사하고, 사실 지인의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도 관심이 없다. (대체 그걸 왜 알아야 하지..?)
안부라는 건 가끔 그 사람이 생각날 때 마음으로나 전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지나다 지인이 사는 동네가 보이면 가끔 영혼을 보내는 그런 식의 안부를 전하던 사람인지라, 요즘의 내가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요즘은 생각나면 전화라는 걸 한다.


은평 성모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인 지인 생각,
그 병원으로 돌쟁이 아들을 데리고 꼬박꼬박 치료를 다녀야만 하는 육아 동지 생각,
대구발 소식이 들릴 때면, 울산으로 이사 간 4월이 산달인 대학동창 생각,
고향 상주로 내려가 연락이 끊긴 어떤 언니 생각,
구미에 사는 시고모님..
병원 오가는 길엔 이 병을 앓으며 알게 된 지인들,
나처럼 지하철 타고 병원에 다니시는 외삼촌 걱정..
막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 아이 둘과 하루 종일 일주일 넘게 집에만 있다는 친구 걱정,
확진자가 셋이나 나온 마을에 사는 동네 언니 걱정..


생전 가야 안부인사라는 건 명절에나 고르고 골라 세 통 안에 끝내는 인간이 남 걱정을 하고 있다니.
가정보육 두 달이 넘어가 오전시간 긴급 보육으로 연명하는 내가, 내 코가 석자인데도 타인의 안부를 염려할 마음이 생기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걸 전염병의 순기능이라 해야 할까.


어떻게 지내?
생각나서 걸어봤어.
부디 무사하자 우리.
좋은 날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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