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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웨딩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by 상지

일반적으로 한국의 결혼식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가는 예식장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고, 하객들도 그 이상의 주례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한 시간 넘게 진행되는 결혼식도 있다. 하우스 웨딩도 그렇고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예식이 그러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거니와 하우스웨딩이라는 것도 사실 오리지널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정말 급하게 준비한 결혼을 제외하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와 포토테이블, 식전 영상은 거의 존재한다. 신랑이 입장할 때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지금 이 순간" 신부가 입장할 때는 "you raise me up"을 식장에 고용된 알바가 불러주는데, “지금 이 순간”의 원곡 가사와 맥락을 알고 있는 이라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실소를 금치 못할 유행이다. 사실 이 곡은 자기가 진행하던 실험의 대상이 없음을 알고 지킬이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겠다며 부르는 노래로, 결과적으로 지킬은 선한 지킬과 악한 하이드로 분리되어 한 몸을 공유하게 되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금 이 순간”에 어울릴법한 곡이기는 하지만 결혼 후 서로가 지킬 앤 하이드가 되어 평생을 비극속에서 투닥거리며 살아갈 신랑 신부의 앞날을 예견하는 곡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예식은 서구에서 들어온 풍습인 웨딩드레스를 반나절쯤 빌려 입고 부케를 던진다.

폐백은 상황에 따라 생략 가능하고, 한복은 빌려 입는 게 경제적이다.

주례가 있건 없건 컨설턴트가 미리 짜 준 내용에 따라 식이 진행되고, 남들과 비슷한 배경에서 비슷한 포즈로 찍은 사진을 식장 앞에 걸어두고 트렌디하고도 똑같은 결혼 이벤트를 치른다. 그렇게 남들과 똑같은 거 해 놓고선 엄청나게 독특하고 색다르고 남다르다며 결혼 준비 카페에 후기를 빙자한 자랑도 잊으면 안 된다. 드레스 입고 찍은 셀카와 신부대기실 사진은 필수다. 심지어 신혼집에 들이는 혼수도 신혼여행도 주고받는 예물 예단도 유행이 존재한다. 이러한 유행과 과시욕을 이용한 마케팅이 성행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유행과 취향 사이를 오고 간다.


내가 결혼했던 6년 전에는 압화 예단편지와 애교 예단이라는 것이 있었다. 예단을 들일 때 예비 시부모님께 드리는 손편지와 작은 무엇이라나. 하지만, 남들은 애교 예단 등등을 고민하던 즈음, 나는 시부모님과의 문제로 파혼을 고민했었다. 우리가 부족한 집안도 아닌데 왜 우리 부모님은 딸 가진 죄인이 되셔야 하는지, 예비신랑은 쓰지도 않는 편지를 왜 나는 예비 며느리라는 이유로 고민해야 하는지 등이 파혼의 사유와 더불어 내 속에서 시끄럽게도 부글거렸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다시 결혼식으로 돌려보자.

순백의 웨딩드레스에는 사실 드레스만 있지 않았다. 신부 가족과의 연계성을 상징하는 오래된 물건 (Something old), 신부가 살아갈 새 인생의 행운을 상징하는 새로운 물건 (Something new), 친구와 가족이 언제고 신부를 돕겠다는 의미의 빌린 것 (Something borrowed), 정숙함을 상징하는 파란 물건 (Something blue)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빌려 입는 흰 드레스와 반지만 들어왔다. 전통혼례와 한복은 개량되고 퓨전이라는 명분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겨우 살아남았다.

사실, 시간을 내어 결혼식에 참석해준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돌리는 것은 일본에서 들어왔고, 눈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말은 사실 중국의 속설이다.


일생일대의 큰 사건인 결혼이라는 것이, 까 보자면 전부 짬뽕인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 하나 온전한 모양도 없다.

모양이 온전하지 못함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선택하고 소비한 우리 세대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그 보석처럼 반짝이는 결혼식을 끝으로 조선 후기와 개화기 사이를 오가며 살게 되었느냐고.

결혼식 이후의 결혼 생활은 어째서 선택 불가능한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중요한 건 식이 아니라 더 길게 살아갈 삶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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