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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 Apr 30. 2024

잔인한 4월이 가면...

더 늦기 전에 남겨야 할 이야기

사랑한다는 말..

얼마나 자주 하세요?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에게 그 말이

허락돼있는 동안에는

정작 그런 생각 못 하게 되죠.     


‘에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싶기도 하고,

마음엔 가득 차 있으면서도

표현하려면 쑥스러움이 앞서고..     


또 한편으론

사랑한다는 흔한 말에

내 사랑이 가볍게 휘발될까 봐...

그래서 아낀다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만약..

어쩌면 그 말을

다시는 못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면...     


말한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할 수 있을 때 왜 그리 아꼈었나..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다다음 날 아침 방송 오프닝으로 썼던 원고다.

  <아침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쓴다는 것> 이 글을 쓰고 나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 힘겨웠던 10년 전 4월의 나는 빈 문서 앞에서 숱한 밤을 새우고서 과연 무슨 말을 적었을까. 무슨 말로 꾸역꾸역 빈 문서를 채워가며 하루하루를 모면했을까...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겨우 그때의 원고 파일들을 다시 열어볼 용기가 난 건지, 아니면 단지 무뎌진 틈에 호기심이 발동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다시 들여다본 10년 전 4월의 흔적들 속에서 유독 이날의 오프닝이 눈에 밟혔다.      

  시그널 음악을 깔고 하는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음악이 나가고, 음악이 끝난 후 곡 소개와 함께 본격적으로 첫인사를 하고, 오프닝 멘트보다는 조금 더 풀어진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채웠었다.      



엊그제부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전체가 걱정과 안타까움에

젖어 있는 상황인데요.     


그런 와중에 우리의 눈시울을 더 적시게 만든 건

가라앉아가는 배 안에서 학생들이 남긴 메시지였죠.    

 

어쩌면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거란 걸 예감한 듯한

긴박한 순간에..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대부분

무섭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던

열여덟 살 아이들의 현명함이..

지금은 오히려 더 안타깝고 애처로운 상황이지만요.

덕분에 우리가 눈물겹게 배운 거 한 가지는 있네요.

사랑한다는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거요.     


여전히 마음은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지속되는 거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겠죠.     


무거운 마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여러분께 밝은 햇살기운 보내드릴 수 있도록

저도 더 노력할게요.

여러분도 저에게 기를 보내주세요.          



  어느새 또 잊혔던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고 이틀째, 제발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 구조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하면서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보게 된 건 생존자 소식이 아니라,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의 폰에 남겨진 마지막 메시지들이었다. 가라앉는 뱃속에서 열여덟 살 아이들이 다시 못 볼지 모를 엄마와 아빠에게, 그리고 같은 배 어딘가에서 함께 가라앉아가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무섭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 눈물겨운 메시지 캡처본들을 기사를 통해 보면서 당시의 나는 참 많이 울기도 했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를 번뜩 깨달은 느낌이었다. 그건 바로 열여덟 살 무렵의 나와 내 친구들도 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단 사실이다. 그 아이들처럼 우리도 해맑았었고, 어떤 부분에선 어른이 된 지금보다 훨씬 현명하고 용감하기도 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언제부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게 된 걸까? 오히려 그땐 알았는데 지금은 까맣게 잊고 지낸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걸.. 침몰하는 뱃속에서 열여덟 살 현자들이 내게 일깨워준 듯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10년 전 그 눈물겨운 깨달음을 다시 까맣게 잊고 10년을 더 늙어왔단 사실을 이렇게 깨닫고 있다.


  20세기의 영국 시인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는데, 21세기 한국의 4월은 또 다른 의미에서 잔인한 달이 되었지만... 찬란해서 더 비극적이기도 한 눈부신 계절을 데리고 어느새 그 잔인한 4월이 벌써 떠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만으로 나이 한 살을 더 먹었고, 그 기념으로 브런치에 글도 쓰기 시작했고, 벚꽃이 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무사히 기념사진도 남겼고, 엄마의 칠순 생신도 가족들과 오순도순 보냈고, 아빠의 항암치료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맡은 방송의 봄 개편도 무사히 넘겼고, 그 와중에 바다도 보고 왔고, 영화도 세 편이나 보았고... 항상 시간이 어디로 새는지 모르게 순삭되는 것 같아 허무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돌아보니 허투루 흘러간 게 아니었다. 이만하면 알찬 4월이었다 싶다.

  다만, 아직 남기지 못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이 쌓였는데, 시간은 내 사정 따위 기다려주지 않을 테니... 뒤도 안 돌아보고 4월은 곧 떠나갈 테니... 그런 점에서 잔인한 4월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잔인한 4월에게도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 사랑했노라. 이 말만은 남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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