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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Dec 23. 2023

크리스마스 선물

좋은 이웃이 생겨 기분 좋은 날 

새 아파트로 당첨되고 들뜬 마음으로 둘러본 동네는 경기도 한 시의 오래된 마을이었다. 높은 산자락 옆에 계곡이 흐르고 박물관도 인근이라 퍽 마음에 들었다. 2살도 안 된 아이를 유아차에 태워 와 본 곳이었는데, 이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곳에서 어찌 지낼까 기대됐다. 


역시 짧은 봄은 봄대로 새로나는 새싹에 설렜고, 여름엔 유원지에 모여드는 이들로 아파트에서 나가고 들어가긴 힘들었지만, 걸어서 계곡에 가서 놀 수 있었다. 지인들을 이르게 초대해 놀았다. 가을엔 하루하루가 아까워 산에 가고, 사무실 워크숍도 아예 이곳으로 했다. 겨울이 되니 또 집에서 보이는 산 설경은 어떻고. 눈썰매 타러 어디 안 가도 좋다. 이렇게 새로 이사 온 집을 무척 좋아할 때 

한 켠으로는 동네 주민에 마음이 쓰였다. 산 좋고 물 좋은 시골 같은 곳에는 보육원이 있었다. 처음 동네를 둘러볼 때 보육원 안에 오가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박물관에서 여럿 노는 아이 중 하나가 우리 아이의 장난감 카메라에 관심 가질 때 조금 다르다 생각했다. 무척 조심하는 보호자와 아이의 조금은 낡아 보이는 옷차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족과 함께해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우리의 모습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괜히 편견을 갖고 아이를 불쌍하게만 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후원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과 모여 쿠키를 구워 전하거나 옷가지를 챙겨 보냈다. 내겐 큰 용기였고, 내겐 큰 시작이었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 역시 후원이 필요한데, 사람들도 큰 용기였겠구나. 싶었다. 


아파트 주민에게 같이 하자 얘기하고 싶었다. 쉽진 않았다. 새로 생긴 놀이터에 주민들은 놀이터가 훼손될까. 염려했다. 길목에 있어 실제 동네 인기 놀이터가 되었고, 훼손도 되었고,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어마한 입간판도 세웠다. 얘기는 잘 못 흘러가... 부모들이 아이들 감시는 뭐 하고... 까지 커뮤니티에 말이 나오자,  나는 조심히 만류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역 주민 아동과 함께하자는 이야기보다 차별하고 배제하고 편견을 갖지 말자는 이야기까진 이르진 못하고 그런 맥락에서 조심히. 대다수가 인근 보육원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거두는 사이 언젠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함께 읽고도 싶어 졌고, 기회가 되면 후원도 가고 같이 하고 좋은 이웃이 되자 하고 싶었다. 조금은 먼 일로 두고서. 


계절 하나씩을 다 넘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입을 떼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우리 동네 보육원에 선물 같이 해요!라는 말. 어렵사리 꺼낸 말에 아래층 사는 분이 바로 좋아요! 호응해 줬고 힘입어 공지하였다. 


"우리 동네에는 보육원이 있는데, 22일(금) 50명의 아이들과 10명의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합니다. 빵을 안 먹은 지 조금 되었다 하여 빵과 과일을 준비해 전하면 어떨까요?" 


나중에 들어오니 빵을 안 먹은 지 오래됐다는 말에 울컥했단다. 지금도. 어떤 이는 아이를 올해 초에 낳고 감성적이 됐다며 30만 원을 바로 보내오셨다. 어떤 이는 보육원에 어머니가 오래 봉사를 해와서 마음이 간다고 잘 전해달라 했다. 


반나절만에  11 가구가 모여 100만 원 넘는 돈을 모으게 되었고, 인근 마트에서 에그타르트 10판, 바나나 10송이, 초코빵 5박스, 머핀 10박스, 초콜릿 1통을 담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전했다. 카트를 가득 채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얼마 안 되는 빵과 과일의 양에 놀랐다. 매일 준비할 밥, 간식, 학원비 등 차라리 필요한데 쓰시라고 돈이 좋겠다 마음 모았다. 아래층 이웃과 상의하고, 동행하고, 소감을 나눈 바다. 

차 트렁크에서 내려놓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무실 한편에는 케이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 가득했고 함께 간 아이에게 원장 선생님은 아이에게 선물을 권했다. 아이에게 우리 동네에.. 이야기를 시작하면 듣기 싫어했는데(아마도 감정 이입을 크게 하는 것 같다) 가서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레고를 보고, 오늘 나눠줄 선물 자신도 받고, 근황을 편히 나누다 보니... 그냥 이웃이었고,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에게 보다 누구보다 내게. 


 https://naver.me/5R8KDdr3

- 블로그에 올라온 그림으로 보니 더 따뜻하다!


벚꽃 피는 봄날 이웃들과 놀러 오란다. 무척 예뻐진다고!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남다른 건축양식이라 멀리서도 그러했다. 기대됐다. 끝나고 새로 사귄 아래층 이웃과 헤어졌다. 곧 집으로 초대하겠다 했다. 좋다고도 했다. 


이웃이 생겨 좋은 크리스마스이브 이브날,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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