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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ug 24. 2023

가을이 오나 봐

어제, 처서비가 내렸다.

며칠 전부터 에어컨 없이 잘 수 있겠다 싶더니 어제는 처음으로 자다가 추워서 깼다.

아, 이렇게 무덥던 여름이 가는구나.


나는 환절기를 좋아한다.

봄날 오후 후끈한 바람이 불어와 어느덧 여름이 되는 느낌, 어느 여름날 밤이 서늘해지는 듯하다 가을이다 싶은 순간, 가을 마지막 남은 나뭇잎이 코끝 시린 매서운 바람에 떨어지며 겨울이 오는 공기, 그리고 따뜻한 햇살에 눈이 녹아 걸을 때 찰박찰박 나는 그 소리..  그 짧지만 분명한 계절의 변화는 대자연의 신비함이 느껴져서 좋다. 4계절이 있는 곳에 태어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와 더위를 많이 타는데, 환절기는 어쩌다 보니 춥게 입은 사람이 되어 버린 사람과, 어쩌다 보니 덥게 입은 사람이 우왕좌왕 다 섞여있는 모임 같아 편안하다.  

 

여름의 더위가 그치고 가을로 넘어가는 그 시작을 처서라고 한다. 그리고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한단다. 이 표현도 너무 동화스럽고 몽글몽글해서 마음에 든다.

절기는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역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절기표현이 익숙해지고 내 몸으로도 느껴지다니 이제 나도 어르신이 된 것 같다.


정말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알수록 놀랍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는 음력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처서가 지나니 확 꺾여버리다니, '처서 매직'이라고 할 만하다. 어제부터 내린 비에 오늘 낮까지도 공기가 시원하다.


그런데 처서에 내리는 비는 좋지 않단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는데,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라고 하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고 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만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려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고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이다. -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그러고 보니 시할아버님댁에서는 쌀농사를 짓는데, 무심한 손주며느리는 처서에 비오니 시원하다고 좋단다.

나도 어르신이 된 것 같다고 한 말 취소다.

난 아직 철없는 앤가 보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농사일도, 며느리노릇도, 빈말도, 아는 척하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매번 귀엽게 봐주시니 무한감사드린다.


여름은 끝나가는데, 제주도에 와서 생각보다 해변으로 많이 못 나간 것 같다.

완연한 가을이 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해변으로 자주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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