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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ree Nov 19. 2020

새로운 시작의 시작에서.

퇴사 외치기 프로젝트

저 퇴사하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힘들어서 몇 달을 전전긍긍했었다. 스스로가 꽤나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고, 팀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게 나를 막아섰다. 못해준 것들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이 정글 같은 곳에 남겨두고 나만 홀랑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매일같이 '퇴사한다고 언제 말할 거야~'라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조금만 있다가..라고 말하길 몇 달째가 되던 어느 날, 오징어 입 튀김과 맥주를 사이에 둔 불금이었다. 신나서 수다 떨다가도 갑자기 머릿속에 드리운 먹구름이 남자친구의 눈에도 보였나 보다. 대체 왜 퇴사를 외치지 못하는지 진지하게 물어왔다. 


'아니.. 일도 이렇게 많은데 상사로서 뭔가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나만 홀랑 나가는 것 같잖아'


지금 다시 되새겨보니 남자친구가 화 안 낸 게 다행(?)이다. 고작 대리 주제에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리 큰 생각을 했었을까..! 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만들어둔 사내 문화에 피해를 받는 것에 대해 왜 내가 미안해하냐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물장구쳐봤자 우물 안인 것을 잊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꼭 퇴사를 말하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더니 어쩐지 조금은 먹구름이 걷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고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돈을 적게 받는 것보다, 이해되지 않는 부당한 상황을 못 참는 나에게 퇴사의 불을 지펴준 '승진 발표'가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면 인정받을 거라는 나의 소신과 어긋난 이곳의 승진 사유는 다름 아닌 애사심이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평가기준도 모호하고 공정성도 없는 사유에 신물이 난 나는 당장 퇴사를 외쳤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 직원들 중에 네가 일하는 결과물이 제일 마음에 들어'라고 말하던 대표님은 '회사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감히 퇴사를 말해?'라며 나를 배신자 취급했다. 예, 저는 회사보다 저를 더 생각해서 퇴사를 하겠습니다라며 맞받아치고서 뒤돌아 나오는 길에  그간 열심히 일한 나의 시간들에 대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5년도 안된 회사에 입사해서 문서화 작업부터 사내 메신저 셀렉 및 구축까지 해온 모든 시간들은 묵살당했고 내가 만들어둔 제작물들은 다른 이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재료가 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직업을 애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이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표님의 마음과 정면충돌하였다. 이제 와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내가 했어요!'라고 외쳐봤자 내 귀에만 들릴 뿐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났다. 나의 청춘을 더 할애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게 됨에 대하여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나는 퇴사하고 나서도 만날 수 있는 인연들, 문서화 작업에 조금 더 능숙한 실력을 얻었고 내 서른의 수확은 그걸로 충분하다.


서른, 새로 시작하기 좋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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