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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ree Dec 05. 2020

드디어. 하다. 퇴사.

끝은 또 다른 시작이랬던가.

퇴사를 말하고서 내 인생 가장 길었던 한 달을 보냈다. 일을 많이 주면 많이 주는 대로, 적게 주면 적게 주는 대로 압박이 되는 신세계를 경험하였다. 실장의 대학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고 역시 학연지연에 의한 우리나라임을 절실하게 느꼈던 나에게 마지막 날 걸려온 실장님의 전화는 한마디로 '정뚝떨'.


'내가 너한테 못해줘서 나가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다..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까 봐 너무 걱정되는데 혹시나 그랬으면 다 잊어주고~ 너무 미안해서 마지막 달에는 연락도 잘 못했네. 앞으로 승승장구 하렴~'


띠용- 그 자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귀 닫고 있던 그녀가 속상하다며 수화기 너머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말들이 진심인지 조차도 나는 모를 일이다. 어차피 마지막인 것을, 더 말해봤자 뭐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입을 꾹 닫았다. 나도 진심이 아닌 말들로 그냥저냥 통화를 마치고 무사히 퇴사를 했다. 사람에 질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허한 마음이 들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아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예전에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한 8년 전쯤 들었던 말인데 마음 깊숙하게 박혀있다가 이제야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하여 조금씩 내 직급에 무게를 얹어주었다. 나는 아직 임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개 대리였고, 저 윗분들과 소통할 때면 꽤 자주 여기 좀 봐달라고 허우적대는 스스로를 느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다시금 마음에 새겼고, 언젠가 회사 후임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그 말을 내뱉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꼰대였을까..싶다!ㅎㅎ)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좋은 해결책을 알려주는 좋은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는 거, 그거 하나만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에요. 대리님이 해주시는 말들이 정말 친언니 같다고 느껴서 마음이 뭉클했었어요. 솔직하게 좋은 상사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대리님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리님은 이미 그런 분이에요. 디자이너로도 닮고 싶고, 사람의 됨됨이도 닮고 싶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이런 따뜻한 마음을 주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마지막이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고마운 마음들을 들고 집에 와서 하나하나 풀어보던 중, 한 후임이 적어준 편지 구절에 마음이 찡해오고 눈물이 났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회사는 회사다'라고 다니려고 마음먹었고,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었다. 편지를 읽고 나자 그래도 이 곳에서 나의 노력이 담긴 시간들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뭉클해졌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나도 첫 직장 첫 상사에게서 배운 것이 많았다.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여서 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게 오히려 악영향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꾹꾹 눌러쓴 편지 두장이 나의 그 마음들을 다독이는 것 같았다. 


늘 퇴사는, 이별은 사람이 아쉽다. 

오늘도 사람이 아쉬웠고 사람에 위로받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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