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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Dec 30. 2019

예상치 못한 행복

런던&아이

아침부터 남편과 딸아이를 재촉했다.

일 년에 한 번 하이드 파크에서 열리는 윈터 원더 랜드(Winter Wonder Iand)를 가기 위해서였다. 서둘러 아이의 도시락을 챙기고 남편과는 그곳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자고 하며 길을 나섰다.

남편은 머뭇머뭇했지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이럴 때 좀 즐기고 싶다고!'

외벌이 연구원 남편과 살면 모든 지 아껴야 한다. 계절마다 아이 옷 한 벌 사주기 어렵고 한 달에 한 번 외식은 아주 큰 맘을 먹어야 한다. 특히나 영국에서의 생활은 늘 어마어마한 렌트비에  쫓기는 신세라 더욱 그렇다.

 

집 앞을 나서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또 아이가 유모차를 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유모차 타자."

남편이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걸어갈 거야!"

" 우리 많이 늦었어. 그래서 유모차 타야 돼!"

"그럼 뛰어갈 거야!"

아이는 지지 않았다. 24개월 이후부터 아이의 고집은 내가 꺾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최대한 회유, 그리도 안되면 협박이었지만 협박은 이제 잘 통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제 발로 걸어서 기차역까지 갔다. 집 앞에서 2분 거리의 기차역을 20분 남짓 걸려 도착하면서 내 속은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지 말까? 도대체 내가 왜 거길 가고 싶어 하는 거지?'

까짓꺼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머릿속 그려지는 몇 가지의 생각들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경험시켜줬을 때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들과  영국에 사는 동안 아이에게 영국을 최대한 느껴보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욕심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하이드파크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아이는 좀이 쑤시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나는 아이를 붙잡느라 애를 먹고 남편은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끌고 다니느라 애를 먹으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다양한 크리스마스 용품들과 그릇들. 아이들의 시선을 끄는 비눗방울 장난감과 사탕 꾸러미들 그 길 끌에 광활하게 펼쳐진 놀이기구들,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느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는, 엄마였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각들로는 아이는 신이나 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내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아이는 수많은 인파들 속에 홀로 뛰어다니고 싶어 했고, 나는 아이의 가방에 매달린 끈을 팔목에 묶고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했다.


막연하게 영국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 보낸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아이가 아파서 집에서만 보냈고 두 번째 크리스마스는 뭔가 색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에 길을 나섰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고 아이는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여러 가지 길거리 음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비좁은 자리에 슬쩍 엉덩이를 드밀고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패티 한 장 넣은 햄버거와 소시지, 감자튀김을 사 가지고 왔다. 아이에게는 영상 하나를 틀어주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였다. 차가운 비바람이 천막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먹는 재미를 누려보겠노라 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자 했던 욕심도 부질없는 일이 되자, 아침부터 남편과 아이를 채근하여 달려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다 먹을 때쯤 비가 그쳤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데리고 퇴근시간을 피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원더랜드를 빠져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멈춰 섰다. 골대에 농구공을 넣으면 커다란 인형을 주는 게임 앞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농구장에 가서 농구를 할 만큼 남편은 농구를 좋아한다. 슬쩍 내 눈치를 보며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아침부터 재촉한 것에 대한 미안함 마음에 그러라고 했다.

한 번 공을 던지는데 3파운드, 번 던지면 10파운드. 남편은 한 번엔 자신 없다며 10파운드짜리 게임에 돈을 지불했다. 남편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이와 나도 남편의  게임을 지켜봤다.

한 번, 두 번, 공들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겨나갔다. 안타까운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는 아빠의 모습을 집중하며 바라봤다. 나도 남편을 바라보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제발, 한 골만 넣자!'

마지막 공 하나가 남았다. 아이는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달려 나가고 나는 달려가는 아이를 붙잡았다.

슛! 공이 골대를 뱅글뱅글 맴돌았다. 사람들도 아이와 나도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팅!  공은 골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남편과 내 품에서 벗어나 남편에게 달려가는 아이, 그 사이에서 황당하다는 듯 남편을 바라보는 나. '그동안 농구 왜 한 거니?'

"이젠 진짜 집으로 가자!"

그때였다. 점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커다란 인형을  안겨 주었다.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렸다. 신이 난 아이의 모습에 나와 남편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행복은 예상치 않는 곳에서 만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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