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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Mar 06. 2020

농구를 사랑한 물리학자

런던&아이

남편은 또 유튜브를 본다.

남들은 물리학자랑 산다고 하면 물리를 사랑하는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지만 우리 남편은 물리보다 농구를 더 사랑하는 남자다. 퇴근 후 집에 와서도 농구 경기를 보며 기술을 연구하고 매주 있는 농구 시합 경기력 향상을 위해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한다.


결혼 전엔 운동 하나쯤은 하는 남자를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은 그것이 남다른 고충이 되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땐 남편이 한 번쯤 농구를 쉬고 아이를 봐주었음 하는 바람과 내가 알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힘들 남편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의 충돌이 일어난다.


남편은 영국에 가면 농구클럽에 가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 또한 남편에게 그러한 시간을 주고 싶다고 여기고 흔쾌히 허락했었다. 이땐 홀로 육아를 해보기 전의 나의 맘이었다. 한국에선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고 잘 만들어진 이유식을 만들어 사 먹이기도 하고 가끔 저녁에 외식도 하며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 온 이후 비싼 외식비와 더불어 친정 찬스까지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남편만 찾기 시작했다.


"언제 와? 뭐해? 빨리 와!"

하루에도 세네 번의 전화연결, 갖가지 핑계를 삼아 남편과의 통화를 시도하며 육아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고 했다. 창문에 붙어 아이와 남편을 기다리며 일주일에 한 번인 농구도 가지 말았으면 하는 얄궂은 마음이 샘솟던 어느 날이었다.


"여보, 오늘은 농구 안 가면 안 돼?"

"안돼!  오늘 나 빠지면 우리 팀 뛸 사람이 없어. 금방 갔다 올게 응?"

"나 아프단 말이야! 응!?"


꾀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많이 아픈 건 아니었다. 남편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농구를 선택한 남편이 너무 얄미웠다. 남편은 농구를 해서 건강해야 가족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어찌 됐든 그날 나는 그렇게 여겨졌다. 좋아하는 농구도 하게 허락해줬건만, 그 단 한 번을 쉬지 않고 기어코 가겠다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내가 왜 타지에 와서 이토록 고생을 해야 하는지 등등의 그동안의 울분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농구야, 나야? 선택해!"

괜한 오기와 뜬금없는 사랑타령에 남편은 황당해 보였다. 그러나 유치한 이 상황이 나에게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겨울 내내 흐린 날씨에 나의 우울함은 극에 달했고, 남편에게 나 좀 살려달라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뭐해?"

남편과 투닥거린 나를 보며 아이가 말했다.

"아빠랑 싸워!"

화가 나 한 말이었다. 아이를 보았다.  설핏 아이의 얼굴에 근심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부모의 감정을 읽기 시작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잠든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이는 나의 어떤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을까, 물음표에 물음표로 이어지는 걱정들을 뒤로하고 아이 곁에서 나 또한 잠들어 버렸다.







농구시합이 있는 날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오기 전부터 서둘러 아이의 저녁밥을 먹이고  곱게 화장을 했다. 평소 입던 늘어지고 색깔 빠진 티셔츠는 벗어던지고 짧은 청치마에 새로 산 티셔츠를 입었다.  아이에게도 아빠의 농구 시합을 구경하러 갈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남편이 집에 오고 농구장에 같이 가자는 남편에 말에 조용히 따라나섰다.  아이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 채 신이나 있었다. 농구장에 도착하고 몸을 풀기 위해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아이는 사람들이 뛰는 모습에 흥분하여 자기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도 몸을 풀고 경기를 준비했다.


심판의 호루라기로 시합이 시작됐다.  

난생처음 본 정식으로 진행되는 농구시합은 무척 흥미로웠다.

격렬하게 밀어붙이는 상대편에게 밀려 떨어져 나가도 남편은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갔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치고 수없는 좌절 속에도 악착같이 포기하지 않고 달려 나가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이 농구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막연하게 농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물리학자라고만 생각했던 남편이 치열하게 농구를 하는 이유, 살아남기 위해, 가장으로서 세상 속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가슴이 찌릿해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일들로 갈등하게 될 것이다. 당장은 그 시간들이  힘들지라도 지나고 나면 그 날들 또한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60세까지 덩크슛을 하는 게 꿈인 물리학자와 덩크슛을 하는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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