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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Jan 12. 2020

달리기 대회

런던&아이

어젯밤부터 남편은 긴장한 상태다.

오늘을 위해 3주간의 준비와 일주일 전부터 식단 조절을 하며 철저히 준비해왔다.

어제는 퇴근하면서 내일 아침에 7시 전에 식사를 마치고 싶다며 문자까지 보내왔다. 집에 와선 밥을 먹으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싶으니 딸아이를 빨리 재우라고 채근했다. 평소와 다른 남편의 모습이 왠지 낯설기도 하지만 웃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웃어버리면 사뭇 진지한 남편을 비웃는 꼴이 되는 거라, 꾹 참고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아침부터 서둘러 아이와 남편의 밥을 챙겨주고 달리기 대회가 열리는 리치먼드 공원(Richmond Park)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추운 날씨에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대회 시작 전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남편은 추운지 겉옷도 벗지 않은 채 허우적거리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몸을 푸는 모습이 왠지 미덥지 않았다.

'과연 남편이 완주를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나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남편은 누구보다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외에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나보다 남편을 더 좋아한다.

남편과 아이의 달리기 연습

가끔 남편과 딸만 있는 공간에 홀로 끼어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육아의 한 부분을 같이 해주는 남편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지난 3주 동안 남편은 달리기 연습을 했다. 주말이나 상점들이 다 닫힌 크리스마스, 일이 끝난 저녁에도, 남편이 달릴 때면 아이도  달렸다.


아이는 자주 넘어지는 편이다. 그런데 3주가 지난 지금은 잘 넘어지지도 않고 달리기도 꽤 잘하게 되었다. 아이가 안정적으로 다다닥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남편의 사랑을 먹고 또 한 뼘 자랐구나 싶어서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우기보단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먼저 깨닫고 읽어줄 수 있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늘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찍질 하며 사랑보다 가르치길 먼저 하는 엄마보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가슴에 품어주는 사랑을 먼저 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현실의 난 아이보다 내 기준이 먼저라, 아이의 장점보다 단점을 보며 그걸 고치려 달려들고 그게 되지 않으면 혼자 맘 졸였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면 나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망칠지 않을지, 나의 부족함으로 아이가 잘못 자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또다시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아, 배고파!'

남편과 5km에 출전하는 사람들이 출발선을 통과하고 나가자 아침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과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나는 먹지 않은 것이다. 가방에서 아이의 간식으로 가져온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출발선을 바라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육아라는 게 장거리 달리기 코스처럼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걸 딛고 끝까지 달려 나갔을 땐 완주의 기쁨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오고 별생각 없이 결승선을 바라보고 있는데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아빠다!"

아이가 소리쳤다. 남편이었다. 22분  26초. 남편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130명 중에 7등! 완주에 놀라고 예상치 않은 등수에 한 번 더 놀랐다. 혼자 너무 진지해서 웃기더니  멋있었다. 사실 추운데 빨리 와줘서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오! 잘했네."

내 말에 남편이 숨을 헐떡이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같이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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