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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Mar 16. 2020

아이가 미울 때,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런던&아이

이를 키우다 보면 너무 지치고 힘들 때가 찾아온다. 특히 아이가 이유 없이 떼쓰고, 말도 안 되는 고집부리면 견딜 수 없이 힘들어 아이에 대한 미운 마음마저 든다.  

그럴 땐 그냥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 엄마라는 의무감 내려놓고  아무것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잠잠히 생각에 잠기고 싶다. 

그러나 아이가 잠을 잘 때까지 그 날 분량의 육아는 끝나지 않는다. 

그럴 땐,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첫 아이가 생겼다.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아이의 잉태에 남편이나 나는 적잖이 놀랐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아이를 갖기에 준비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재정적인 안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내가 빨리 안정된 커리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일인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축복이' 라 부르며 작은 생명이 잘 자라 우리 곁에 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핑 도는 어지러움에도 직장에 출근하고 입덧 중에도 끼니를 건너뛰며 바쁜 일상들을 유지했다. 결국 뱃속의 아이의 존재가 익숙해질 때쯤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비록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한 생명이었지만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아이를 잃은 상실감은 나를 옥죄어 왔다.  


첫 아이를 그렇게 잃고 나에겐 꿈이나 재정보다 아이가 더 중요해졌다. 한동안 지나가는 아이만 보며 훔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고, 임신한 임산부들만 보면 부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곁을 영영 사라져 버린 축복이를 대신할 아이가 너무나 간절히 필요했다. 정신없이 산부인과를 다니고 아이가 잘 생기는 한약을 지어준다는 한약방을 전전하였지만 아이는 이전처럼 쉽게 우릴 찾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구원인 남편을 따라 인도의 한 연구소에서 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간절했던 소망도 내려놓게 되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했던 지난날의 노력을 되풀이하기엔  너무 지쳐있었고, 주변의 환경 역시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인도는 아이는커녕 우리의 미래조차 기대하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라고만 생각했다.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의 연구소 안의 풍경과 밖깥 풍경

 


그러나 기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왔다. 오기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마음의 평안을  인도에서 얻게 되었던 탓일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글이' 우리 딸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다.


간절하지만 내려놓아야만 했던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 그리고 감사, 아이가 미울 때 나는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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