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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은 Apr 04. 2020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런던&아이

거리가 한산하다.

새벽녘 인적이 없을 시간을 찾아 아이를 깨워 남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아이는 밖을 나간다는 말에 신이나 따라나섰다. 아이와 함께하는 2주 만의 외출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재기가 급증하고 집단 면역체 제로 돌입하겠다는 총리의 발언 이후, 영국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코로나 증상이 있어도 집에서만 격리하라고 할 뿐, 어떠한 제재도 치료도 하지 않는 등 영국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통이 터졌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보였다. NHS에 전화를 해서 조치를 받으라고 하기는 하지만,  지난번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NHS 응급실에서 하루 종일 걸려 간단한 진료를 겨우 받았던 기억을 생각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코로나 사태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많은 영국 사람들은 마스크도 끼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동양인을 혐오하며 피하기도 했다.


영국의 하루 사망자가 500명을 넘기기 시작했다.

3월 23일 보리스 존슨 총리는 뒤늦게나마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스크 안 껴도 된다고 말하던 보리스 총리도 결국 코로나에 걸렸다ㅠ. )


외출을 금하고 집안에만 머무를 것, 생필품(식료품, 의약품) 판매 상점을 제외한 모든 상점은 폐쇄, 장례식을 제외한 모든 기념식 금지(결혼식, 세례식)등, 3인 이상의 모임 및 화합 금지, 도서관, 야외운동장(단 공원은 운동 및 산책을 위해 개방되나 공원 내 다수의 화합은 금지), 체육관 등 폐쇄, 불필요한 외출 시 벌금 부과,

특이 상항으로는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 허가(단 최소한의 외출), 재택근무 불가능한 필수적인 업무는 출퇴근 가능, 1일 1회 운동 및 산책을 위한 외출 가능, 여권이나 항공권 소재 시 공항 이동 가능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사회적거리 운동의 일환으로 거리를 두고 마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성명서 이후 멘붕이었던 영국 사람들도 차츰 침착함을 찾아갔다. 마트나, 약국 등을 이용할 때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어가게 하며  정해진 인원수만을 허용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한 하고 있다.

마스크나 머플러로 입과 코를 가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마트 안에서도 이전의 사재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칸칸이 비워졌던 선반들도 물건들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는 밖으로 다시 나와 본 세상이 모두 다 신기한 모양이었다. 달려 나가 따뜻한 봄바람을 맞아보기도 하고 가만히 주저앉아 피어나는 새싹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성큼성큼 걸어 잔디밭 속으로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2주 동안 집안에서 아이와 나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 읽기,  스티커 붙이기, 색칠공부, 약간의 베이킹, 촉감놀이들을 반복했다. 밖에는 감기 바이러스 때문에 나가지 못한다고 일러준 말을 이해했는지 아이는 잘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오랜만에 잠시나마 밖으로 나온 아이는 신이나 있었다. 차가웠던 바람이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고 얼어붙어있던 땅들 위로 새로운 새싹이 돋아난 풍경들을 즐기는 듯했다. 나무도 바람 따라 흔들렸다.


아이에게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나무가 우리가 놀러 와서 행복한가 봐."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나도! 나도 행복해!"

"그래? 너도 행복해?"

"응! 엄마도 행복해?"

"엄마도 행복해!"

아이를 보며 지금의 이 시간도 나는 행복할 수 있음을 느낀다.

아이가 이 시간을 무사히, 그리고 행복하게 견뎌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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