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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이국의 향, 사람의 향

by JANE

인도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향신료의 나라이다.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향신료가 황금만큼 귀했다고 한다. 유럽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인도를 차지하려 했던 이유 중 하나가 향신료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향신료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권력과 탐욕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인도에서 몇 년째 먹고살다 보니 당연히 향신료에 익숙해졌고 집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들을 사다가 요리를 해먹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향신료들은 어디서 왔는지, 원래 어떻게 생긴 것들인지 등등. (그래서 향신료 책을 사봤는데 아직도 읽진 않았다;). 원래 식재료에 관심이 많아 찾아보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고아에 향신료 농장 투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고아는 향신료가 대량으로 나는 유명 생산지는 아니지만 향신료 농장 투어인 ‘스파이스 플랜테이션 투어’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사하카리 스파이스 팜(Sahakari Spice Farm)을 찾았다.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갔을까. 35도 더위에 튼 것도 아니고 안 튼 것도 아닌 미미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흘리며 덜컹덜컹 열심히도 달려갔다. 오전에 갔더니 이 시골의 농장 주차장엔 벌써 관광객들의 차들로 빼곡했다. 택시를 타고 왔는데 더 피곤한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입구로 들어갔는데 전통복 사리를 입은 직원분이 꽃잎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들고나와 환한 미소로 꽃가루를 뿌려주며 환영 의식을 해주셨다. 대기하는 공간으로 가니 따뜻한 차를 내어줬다. 무슨 차라고 했는데 잘 못 알아 들어 그냥 맛있게 홀짝홀짝 마셨다. 차를 마시니 멀미가 날 것 같던 기운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우리는 영국 웨일스에서 오셨다는 중년의 부부와 한 팀이 되어 영어 가이드 투어를 받게 되었다. 숲같이 생긴 농장을 함께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가이드는 천천히 향신료들을 설명해 주었고 향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물론 트레이닝을 받았겠지만) 온통 비슷하게 생긴 풀들과 나무들 사이에서 어떻게 향신료 나무와 식물들을 척척 구분해 내는건지 놀라울 정도로 쪽집게였다. 매번 초집중한 우리의 시선은 온통 초록색 풀숲 사이에서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의 방향을 따라 움직였지만 계속 “어디?” “뭐가?”라며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녀는 결국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설명을 이어가곤 했다.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것들을 발견하고 말려서 향신료로 활용을 할 생각을 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떨 땐 풀더미 한가운데 풀을 가리키며 “저기 길쭉한 풀들은 레몬그라스야,” “저 초록색 풀더미는 카다멈이야.” 했고, 비슷하게 생긴 나무들 사이에 어떤 나무를 콕 집어 후추나무, 올스파이스 나무라며 알려주기도 했다. 또 이 농장 안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바닐라 빈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걸 보여줬는데 거긴 관광객들이 진입해서 따가지 못하게 펜스까지 쳐놨다. ‘갖고 싶다 너란 녀석!’ 평소에는 향신료들을 말린 형태나 분말 형태로만 보다 보니 색도 까맣거나 갈색이어서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추측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생명력(?)을 가지고 초록초록한 상태로 자라나는걸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우리 네 명은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초록색 후추들의 작고 귀여운 모습에 반했고, 시나몬 나무라고 알려준 나무 몸통에서 바로 벗겨낸 나뭇조각에서 나는 신선한 시나몬 향에 우리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이드는 여기저기서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 잎사귀들을 조금씩 뜯어낸 뒤 우리에게 냄새를 맡게 해줬다. 막 깎은 파란 잔디 냄새가 날 줄 알았던 잎에서 다양한 향신료 향이 나는 게 예상을 벗어나 깜짝 놀랐다. 나뭇잎에서 인도 음식 향이 난다는 게 너무 낯설었다. 저절로 그동안 먹었던 인도 음식들이 생각나 남편에게 “어! 이건 비리야니 향이다!” 혹은 “인도 디저트에서 나는 냄새다!” 하며 연거푸 연상되는 음식들의 이름을 뱉어댔다.


그러다 우리나라 향신료들을 뭐가 있나 생각해 봤다. 대표적으로 마늘, 고추, 깨가 있지만 이건 여러 나라에 공통적으로 있으니 우리나라 식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이 뭘까 떠올려보니 향신채라는 답이 나왔다. 두릅, 깻잎, 쑥, 미나리, 참나물, 가죽나물 등등 참 많다. 해외에 나와서 살다 보면 한국은 잎채소를 다양하게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서 오세득 셰프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향신채를 향만 내기 위해 소량으로 쓰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채소들이 흔해 나물로 양재기에 막 무쳐 먹는다며.


제철 나물을 좋아하는 엄마 집밥을 먹고 자라서 그런가 이런 게 가끔 그립다. 인도에도 뭐가 많긴 하지만 한국 것과는 비슷한 것들을 구할 수 없으니 난 고기를 구워 먹어도 탕을 끓여도 볶음 요리를 해도 그저 고수만 왕창 곁들여 먹고 있다. 주변에 어떤 분께서는 깻잎이 너무 그리워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씨를 여러 화분에 파종해 키워 드셨다. 그분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실 때 남아계신 분들에게 열 개 정도 되는 깻잎 화분을 선착순으로 나눔을 한 적이 있는데 순식간에 끝나버려 난 가져올 수 없었다는 웃픈썰. 우리는 그때 우스갯소리로 인도의 문익점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겐 그 귀하다는 트러플 향보다 고국의 흔한 깻잎 향이 더 귀한 것이었다.


향신료는 그 나라 음식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고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도드라지는 향은 그 나라의 향이 되기도, 그 나라 사람들의 향이 되기도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인도 공항 안에만 들어와도 인도에 왔단 사실을 바로 코로 느낄 수 있다. 한국에 혹은 해외여행을 갔다 인도로 다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매큰하고 살짝 케케한 향신료의 향이 ‘웰컴 투 인디아!’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음식에는 당연하고, 차며, 디저트들에도 어디에나 향신료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 향은 도시를 늘 가득 채우고 있다.


집에서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 문을 열어두면 어김없이 끼니때마다 늘 갓 만든 고소하고 매콤한 인도 음식 냄새가 우리 집 안으로 솔솔 들어온다. 빨래를 널어둔 날이면 섬유 유연제 냄새 대신 음식 냄새가 배면 어쩌나 다시 문을 닫게 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공용 오피스 방음실에서도 점심때가 되니 인도 음식 냄새가 난다. 하물며 공용 라운지는 복도를 한참 지나야 나타나고 사람들은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일 뿐인데도 강렬한 향신료 냄새가 닫혀있는 문을 뚫고 들어온다. (내가 예민한 개코인 것도 있지만 이국적인 향은 이방인에게 더 민감하게 다가온다.)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하루는 인도 출신이었던 베프가 밥 먹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난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한테서 커리 향이 난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 갔거든? 근데 내가 살고 있는 (영국) 아파트에 인도 사람이 살고 있었나 봐. 그 사람이 잠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지나갔는데 커리 냄새가 나는거야!!라며 놀란 듯이 얘기를 했었다. 모국인 인도보단 다른 나라에서 지낸 세월이 훨씬 긴 이 친구는 처음엔 그 말이 불쾌하다고 생각했었겠지만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나도 커리 냄새 나?” 그래서 나도 물었다. “나한테서 마늘 냄새나니?” 둘 다 매번 해 먹는 자취 음식이 파스타, 샐러드 뭐 이런 것들이니 당연히 날 리가 없었다. 내가 만약 영국에 있을 때 아침마다 김치찌개 끓여먹고 학교를 다녔다면 그 친구들은 당연히 나에게서 강하게 톡 쏘는 마늘, 김치 이런 냄새를 맡고 그걸 나와 한국 사람의 냄새로 기억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인도에서 생 커리 잎의 고소한 향내만 맡아도 식욕이 돋을 정도로 좋아하는 향신료 향들이 꽤 많이 생겼다. 달달한 인도 디저트에서 나는 카다멈향과 장미향, 고소한 마살라 도사에서 나는 강황향, 매콤한 민트 고수 소스의 톡 쏘는 향, 큐민씨 향 등 한 번 냄새를 맡으면 자동반사로 “음 맛있겠다!” 하며 입안에 침이 절로 도는 향들. 인도를 떠난다면 너무 그리울 향들이다.


어디선가 다시 이 향신료의 냄새를 맡게 된다면 난 언제든지 인도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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