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Nov 04. 2016

'삥'을 뜯기 위한 함정

인형 뽑기 위에 놓인 지갑을 훔쳤다. 그런데. 

"아저씨, 물어볼 게 있는 데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작년에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학생이 전화를 했다. 꽤 오랜만이다. 시작은 울먹였다. 자신이 지금 난처한 상황에 처했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심호흡 좀 할까? 뭣 때문에 그래? 


"인형 뽑기 기계 위에 지갑이 있었다."


조금 전이다.

학생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인형 뽑기 기계 위에 놓인 지갑을 보았다. 그냥 지나가면 되는 데, 지갑을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갑 안에 있을 돈이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이 다 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순간 떠올랐던 생각이 친구였다. 친구가 지갑을 인형 뽑기 위에 놓고 왔고 자신이 마치 친구의 심부름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해서 가져가면 되겠다고 싶었다. 


"지갑을 훔치다 주인에게 잡혔다."


몸을 돌려 다시 인형 뽑기 기계 쪽으로 걸어가면서 전화하는 척했다. "응, 인형 뽑기에 지갑 있어. 이거 맞지? 하면서. 그리고 태연하게 친구의 지갑인 것처럼 지갑을 습득하고 다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같은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 3명이 학생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야, 왜 남의 지갑을 가져가?"
"지갑이 올려져 있으니까 파출소에 갖다 줄려고 했는 데 왜?"


변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갑 주인과 친구들이 마침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학생이 말하는 통화내용까지 다 들었다고 했다.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변명할 수도 없다. 친구랑 실제 통화도 하지 않았으니 해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분위기는 조금 험악해줬다. 지갑 주인과 친구들이 재영이를 옆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어이, 내 지갑 훔쳐갔으니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데 경찰에 신고해?"
"아니"
"신고가 싫으면 합의를 해주던지?"
"합의?"
"그래 합의. 5만 원만 주면 경찰에 신고 안 하고 없던 일로 할게."
 "잠깐 전화 좀 하면 안 될까?"


그래서 내게 전화를 했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편법은 없다. 그건 소신이기도 하지만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도 하다. 편법은 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더구나 한참 배우고 자랄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학생에게 말했다. 네가 직접 신고를 하라고. 처음엔 놀랐지만 지갑 주인하고 친구들 행동이 이상해 보이니까 일단 학생에게 먼저 신고를 해서 경찰 조사를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아시면 많이 혼날 거라는 걸 겁먹고 있었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 신고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냥 합의를 하고 끝내면 안 될까요 라고 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고를 한 후에 경찰이 오면 나를 좀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주변 CCTV와 주차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해주세요"


5분 정도 지나서 학생 폰으로 경찰관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 경찰관에게 주변 CCTV와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학생이 지갑을 가져갈 당시 지갑 주인과 친구들이 옆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들이 만든 '덫'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학생이 통화하는 내용도 다 듣고 있었고 지갑을 가지고 몇 발짝 가지 않아서 붙잡힌 게 많이 수상해 보이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주변 CCTV를 확인해 주고 그것도 없으면 길가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까지 귀찮겠지만 확인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지갑 주인과 친구들이 꾸민 '덫'


확인 결과, 

CCTV는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그런 장난을 쳤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증거자료가 나왔다. 바로 길가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에서 지갑 주인과 학생들이 고의로 인형 뽑기 위에 지갑을 올려놓은 뒤 골목에서 대기 중인 것이 영상에 찍혀 있었다. 결국, 학생들에게 합법적인 '삥'을 뜯기 위해 지갑이라는 '덫'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그 덫에 걸려던 것이다.


학생한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파출소에서 반성문을 쓰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지갑 주인과 친구들 또한 파출소에서 각각 부모님을 불렀던 모양이다. 파출소에서도 이번 일이 청소년들 문제이기 때문에 입건하기보다 부모님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훈방조치를 했다고 했다. 모두 잘 됐다. 


2시간가량 지났을까? 학생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맙다는 인사였다. 학생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부탁드렸다. 충분히 스스로 느끼고 자책했을 테니까...


끝.



















매거진의 이전글 시험이 끝나면 한강 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