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ver Young Nov 25. 2024

결혼 생활

의지하되 홀로서기(1)



 [챙겨줘야 할 애]

그게 학생 때 내 이미지였다. 내가 인도가 없는 길을 걸으면 친구들이 길을 막아주거나 팔랑팔랑 뛰는 내 팔을 낚아채서 안쪽으로 잡아당겨주곤 했다. 주변에는 유독 키가 큰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이 보기에 나는 꼬맹이었다. 6학년 때도 1학년이라 착각할 만큼 작아서 동년배 친구 중 하나는 종종 나를 번쩍 안거나 업어주곤 했다. 집안에서도 막내뻘이면서 몸집이 제일 작았고 양가 합쳐서 무려 13명의 키다리 사촌오빠들 무릎을 방석삼아 앉고 뒹굴고 하던 기억이 많다.


 꽤나 사랑을 듬뿍 받고 여기저기 늘 나를 거드는 손길이 있었다는 건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 있으나 사실은 한 사람의 자립심을 심어주기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나의 남편은 누가 봐도 골격이 크고 우직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다. 자상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향은 결혼 후 아내인 내게 초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엌에서 칼질을 한다 싶으면 손끝이 베이고 툭하면 길에서,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조금 무리한다 싶으면 요통으로 허리에 찜질팩을 달고 살거나.. 때로는 앞에서 눈물 그렁그렁하는 아내이니 내가 생각해도  손이 많이 간다 싶다. 남편의 눈은 늘 내가 발을 접질릴까 봐 땅에 가있고, 그러다 내 눈에도 머물다가 좌우 차도에도 있고 몹시 움직임이 바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마치 70대를 맞이하는 우리 부모님 세대 중년 여성 같군..


 암튼 그가 늘 나의 반경에 머무르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는 그가 오래간만에 찾은 취미인 사진에 몰입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풍경이나 가족 정도만 찍으면 됐지 뭐 하러 SNS를 통해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답하면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보정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매번 피곤하다고 하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남편이 혹여 집안일까지 더 할까 봐 최대한 일을 나가기 전, 집안일+ 저녁까지 부지런히 만들어놓고 왕복 두 시간을 서서 오가고 있었다. 퇴근하고 식사가 끝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같이 운동 가기]를 권하기가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하려다가 몇 번이고 말을 삼키고 또 삼키는데 정작 남편은 일찍 자거나 정말 휴식을 하기보다 새벽까지 아무런 인맥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걸 보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니! 그들이 집안일을 대신해 줘? 장보고 저녁 메뉴를 짜줘? 그게 아니면 시원찮은 내 벌이보다 더 나은 벌이를 제공하나? 그들이 SNS로 휘릭 날리는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내가 하는 그 모든 것보다도 위로가 돼?

본래 좋은 마음에서 했던 일들이 마치 내가 [ 친히 남편을 위해 애써 해 준 일]처럼 느껴지고 가뜩이나 만원 지하철에 끼어 다니고 수업하러 하루 몇 번이고 내달리는 것에 지쳐서였을까.  어느 날 밤, 또다시 컴퓨터로 보정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다 못해 먹은 것까지 토할 지경이 된 나는 하루 날을 잡고 제대로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그날도 하나하나 꼬집어가며 말하다가 내 분에 못 이겨서 울었던 듯하다.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맥이 탁 풀린 목소리로 [안 할게 이제.. 근데 여보. 내가 당신에게 참 많을 걸 맞춰주고 있는데.. 난 남편이지 아빠가 아니잖아.. 난 게임도 안 하고, 술 마시러 나가는 것도 끊고.. 사진도 안 된다고 하면 난 뭘 해?]

다른 어떤 말보다도 아빠가 아니라는 말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내가 받는 그의 배려와 관심이 왜 나는 아내로서 당연한 것이라 여기게 되었을까. 내가 그렇게나 지나치게 의지하고 기대기만 했었나. 멍.. 했다. 조금 전까지 쓸데없이 사진 부탁 들어주지 말라고 생난리를 친 내 모습이 한없이 떼쓰는 애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밖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못해 속이 텅 빈 듯한 남편이 보였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8화  결혼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