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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2.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2-6 인성 교육보다는 영어, 수학이 먼저

 “우리 딸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반에 몇몇 남학생이 있는데, 선생님한테 대드는 것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대요. 담임이 여선생님인데, 남학생들이 하도 말도 안 듣고, 약 올리고 하니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운 적도 있대요. 그런데 그 애들이 거의 다 상위권이라고 하더라고요.”


 분당에 사는 지인이 한 얘기다. 예전에 공부 잘하고, 인성이 바른 모범생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공부 따로, 인성 따로인 경우가 흔하다고들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요즘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그 밖의 다른 부분은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행동을 해도 공부만 잘하면 딱히 혼을 내지 않고, 아이가 기분 나빠할까 봐 조용히 묵인해 준다는 얘기다. 결국 공부 하나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데, 그러다 보니 공부만 잘하는 못된 아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공부만 하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만한 건전한 놀이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도 없고, 오직 늘어나는 건 힘들게 시키는 영어, 수학 학원들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남자아이들은 게임방에서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여자 아이들은 아이돌 그룹에 빠지거나 치장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다. 아이들은 더 예민해지고 난폭해져 가족, 선생님, 친구들에게 함부로 하고, 또 부모는 공부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어르고 달래면서 제발 공부만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 번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가 **과학 고등학교 근처 커피숍에 갔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을 경험했다. 그 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엄마들이 그 카페에서 자주 만났는데, 하루는 그 학교 아이들이 무리로 카페에 들어와서는 저만치 구석 자리에 앉아 자신의 엄마들을 겨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너무 놀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자기 엄마들이 얼마나 애쓰면서 키우고 있는데, 그런 엄마에다 대고 저따위 욕을 해. 정말이지 불효자가 따로 없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 만능주의로 인해 내 아이만큼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부모들의 노력이 오히려 아이들한테 잘못 인지되어 가고 있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부모에게 이끌려 억지로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당연히 시키는 부모가 밉고 원망스러웠을 게다. 그렇다고 부모한테 욕을 한다는 것은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돌이켜 보건대, 나도 아이에게 수학, 영어 문제집 들이밀면서 공부하라고 하고, 시간 되면 학원가라고만 했을 뿐 아이의 인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 잘 보고, 학원 착실히 다니면 온갖 칭찬에 또 그만한 대가까지 지급해 줬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아이는 당연히 공부만 잘하면 최고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야 그 당시 나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 그땐 공부만 잘하면 이상하게도 모든 게 용서되는 상황이었다.


 몇 년 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엄청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엄마를 살해하고 방에다 그냥 방치한 사건이었다. 원래는 엄마, 아빠, 아이 세 식구였는데, 부모가 이혼한 이후로 아이는 엄마랑 단 둘이 살아왔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느라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했고, 아이도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격지심이었는지 아이한테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엄청 심하게 줬던 것 같다. 아이의 시험 점수를 보고 성적이 안 좋으면 시시때때로 구타하면서 “너는 아빠가 없으니 무시 안 당하려면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계속해서 압박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한테 쌓인 분노가 극에 달해 결국 아이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패륜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 당시 기사를 보니 따로 사는 아빠가 엄마와 통화가 안 되니까 아들 집으로 찾아간 것이 이 사건이 드러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기자가 그 아들과의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해 물어봤고, 이에 아들은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냥 멍했다. 사실 난 이 사건을 접하고 나서 세상이 싫었다. 왜 부모와 자식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와 아들의 엇갈린 사랑이 결국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었고, 나 역시 같은 엄마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엇갈린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 속에서.


 만약 우리 사회가 느림의 미학을 마음껏 허용하는 사회라면 위와 같은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서 공부를 안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눈이 홱 돌아가 죽도록 공부한 결과 서울대를 들어갔다느니 하는 얘기는 통하지 않는다. 워낙 학력이 높은 학부모도 많은 데다가 그런 부모들이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있기 때문에 엄마들은 항상 마음이 급하다. 그러니까 굳이 영어, 수학 공부를 미루고 인성부터 바로잡아 나가기엔 사회가 결코 이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글쎄 모르겠다. 지금은 취업할 때 학력보다는 인성을 먼저 본다고들 하던데…….


 어렸을 적, 아마도 『토끼와 거북이』라는 책을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빨리 뛰는 교만한 토끼와 느릿느릿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북이. 이 둘의 마지막 승부를 떠나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그게 더 궁금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긴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학벌, 외모, 집안, 명예, 권력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 더 끌린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 기준은 삶의 경험의 폭에서 달라진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좋은 학벌에 반비례하는 인격이라든지 명예 뒤에 숨어 있는 비열함이라든지 권력 남용으로 인한 불합리성이라든지 출중한 외모에서 드러난 반전 등을 깨닫는 순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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