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더욱더 특별하게 가르칠 수 있을까?’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함과 동시에 난 학부모로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훗날 아이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만한 교육 방법, 다만 매일매일 하되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매일 이 닦는 습관 때문에 안 닦으면 오히려 찝찝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고 매일 공부 습관을 생각했다. 그래서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문제집을 각각 하루에 한 장씩 풀게 했다. 그랬더니 하루 빼먹으면 아이가 찝찝해하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내가 찝찝한 게 아닌가! 물론 3학년 이후에는 아이 스스로가 찝찝해하긴 했다.
그다음으로는 어휘력 향상을 위해 하루에 한 자씩 천자문을 쓰고 외우게 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 자씩 1주일이면 일곱 자를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주말마다 한자를 책받침으로 가리고 읽을 수 있는지 테스트를 했다. 그러니까 1주일에 배운 것만 테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배운 누적된 한자들을 주말마다 테스트한 것이다. 그랬더니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천자문에 나와 있는 천 개의 한자를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한자의 뜻을 생각하며 단어의 뜻까지 유추해 내는 쾌거를 맛보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책을 읽다가 ‘광야’라는 단어를 보고 ‘넓을 광, 들 야’라는 한자를 생각한 후 그 뜻을 합쳐 ‘광야’는 ‘넓은 들’이라는 뜻을 유추해 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수월하게 읽고, 적어도 지금까지 책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매년 학교, 학원 선생님들께서 아이가 어휘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인 내가 아이한테 해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이 한자 교육법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한테 자랑삼아 얘기한다.
“만약 엄마가 너한테 한자 안 해 줬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글쎄요? 그래도 잘했겠지요, 난 워낙 똑똑하니까.”
“웃기고 있네. 그걸 말이라고 하니?”
“사실 내가 남들에 비해 어휘력이 뛰어나긴 해요.”
“내가 너랑 대화를 해봐도 그냥 단순한 말들은 아니더라.”
“어제도 면접반 선생님께서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매우 고급스럽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역시! 그게 다 누구 덕분이지?”
“그렇게 얘기 안 하면 엄마 덕분일 텐데…….”
그리고 한자를 교육시키면서 겸사겸사 사자성어도 함께 교육을 시켰다. 사자성어는 이틀에 한 번, 하나씩 익혀 나갔는데, 한자는 물론 삶의 철학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가 사자성어에서 ‘’이라는 것을 배운 이후였다. 학교 미술 시간에 반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이 잘 안 그려졌는지 계속해서 붓을 탓하며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딸아이가 “능서불택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붓을 탓하지 않는대.”라고 말해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조용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아이는 옆에서 징징대는 친구가 얄미워서 한마디 던진 건데, 그 친구는 그냥 모르고 지나가니 얼마나 통쾌했겠는가! 그러면서 사자성어 공부에 점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글쓰기를 가장 짧은 기간에 정확히 배우는 방법으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학교에서 내주는 일기 숙제를 통해 글쓰기를 배우게 하는 거였는데, 일단 아이의 하루 일과 중에서 기억나는 사건을 들어보고, 그 내용을 다시 재구성해서 아이한테 얘기해 주는 거였다. 그때 내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쓰게 하면서 어떤 식으로 글이 구성되는지 파악하게 했다. 그랬더니 점점 글 실력이 늘어 선생님으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듣고, 매년 글쓰기상도 받아왔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5학년 때부터는 신문에 나온 기사를 바탕으로 시사 토론을 시도해 봤다. 시시토론 하니까 왠지 거창해 보이지만 단순히 신문에 나와 있는 사설이나 오피니언을 함께 읽어 내려가면서 내용 파악을 한 뒤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과 생각 등을 들어 보는 시간이었다. 물론 매일 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정도 그냥 사회 돌아가는 감만 느끼게 해 줬다. 그 당시 아이는 또래들과 관심사가 다른 부분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쇼핑도 하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딸아이는 시사 쪽으로 관심을 보이곤 했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나만의 교육 방법이 훗날 아이한테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강압적으로 아이한테 지시한 부분도 있었고, 아이가 못 따라오는 부분은 혼을 냈다. 매일 해야 하는 학습으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엄마인 나도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밀어붙인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 시기에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큰아이가 심한 사춘기를 겪었던 이유는 바로 나만의 방식으로 밀어붙인 교육 방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지시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존재했고, 혼을 내는 사람과 혼나는 사람이 존재했고, 매일매일 해야 하는 압박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딱히 답은 없다. 얻는 게 있으면 분명 잃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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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직 어려서 엄마 말을 제법 잘 들을 때, 엄마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면 좋을 듯싶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아이는 엄마 말을 절대로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때가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것, 즉 피아노, 글쓰기, 독서, 운동, 견학, 여행 등 학습이나 취미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을 노출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언젠가는 아이에게 분명 많은 영향이 미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