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하듯이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도 아이에게 더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다. 그것도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를 둔 엄마는 아이가 딱히 반항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욕심이 가히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이 엄마에 의해서 결정되고 실행된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바로 나였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 때까지 그야말로 커다란 나무였다. 공부는 물론 성격도 온순한 데다가 참을성도 있었고, 워낙 믿음직스러워서 내가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그런 휴식 같은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고, 그 바람은 아이를 향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우선 아이의 꿈을 엄마인 내가 정해버렸다. 책도 많이 읽고,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 구사력이 뛰어난 편이라서 왠지 국제적인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해 줬다. 그 당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뚜렷한 꿈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엄마가 정해 준 꿈을 받아들이며 마치 자신의 꿈인 것처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엄마, 외교관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외교관? 음... 엄마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니까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자. 자, 여기 보니까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외교 교섭, 파견국의 경제적 이익 증진, 자국민 보호 등을 위하여 외국에 파견된 사람’이라고 나와 있네.”
“그럼,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은 누구예요?”
“너도 많이 봤을 거야, 반기문 UN사무총장님이라고.”
“아하!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요. 얼굴도 보면 알겠죠 뭐.”
“너도 외교관이 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 저 반기문 UN사무총장님 관련 책 좀 사 주세요.”
“당연히 사 줘야지.”
적어도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꿈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면 늘 외교관이라는 꿈을 거침없이 내뱉곤 했다. 게다가 엄마인 내가 옆에서 자꾸 부추긴 탓에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뇌리 속에는 뜻하지 않은 꿈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땐 몰랐다. 아이가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고, 딱히 거부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심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외교관이라는 꿈이 진정한 자신의 꿈이 아닌 엄마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꿈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 꿈을 왜 엄마가 좌지우지해?”라고 하면서.
아무튼 큰아이는 중학교 가기 전까지 너무 순하고 착했기 때문에 엄마인 나로서는 더 완벽한 사람으로 키워 보고자 과도한 욕심을 냈던 것 같다. 100점 맞는 모습을 기대했고, 상 받는 모습을 기대했고, 공부하는 모습을 기대했고, 배려하는 모습을 기대했고, 책 읽는 모습을 기대했고, 봉사하는 모습을 기대했고, 인기 많은 모습을 기대했고, 칭찬받는 모습을 기대했고, 참을성 있는 모습을 기대했고, 글 잘 쓰는 모습을 기대했고, 말 잘하는 모습 등을 기대했다.
한마디로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가 ‘자식을 향한 엄마의 지나친 기대’라는 잔인함을 불러온 것이다. 그러니까 견제하는 힘이 없다 보니 무방비로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경우라고 해야 할까?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의 무시무시한 사춘기, 즉 견제로 인해 나의 지나친 욕심도 많이 수그러들었고,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너그러움도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결코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대입을 치른 어떤 남학생이 자신의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을 합격한 후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사건이다. 그 유서에는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으니 이젠 됐죠?’라는 비아냥거리는 원망의 내용이 있었다. 나도 이 사건을 접하고 사실 남 일 같지 않아 몹시 부끄러웠다. 다행히도 큰아이는 사춘기를 통해 그동안 쌓아놨던 모든 분노를 나에게 다 풀었지만 그 남학생은 아마도 쌓인 감정을 풀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의 과도한 학습량으로 인해 자식과 부모 간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내 주변의 엄마들만 보더라도 학원에 가니 안 가니 하면서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학교에 갔다가 또 학원에 가려면 피곤하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반면 엄마들도 그런 아이들이 안쓰럽긴 하지만 학원에 안 가면 실력이 뒤처질 것이고, 또 학원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보낼 수밖에 없다.
“한 번은 우리 딸이 나한테 너무 섭섭했다며 아주 서럽게 울더라고요.”
“왜요?”
“자기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몸이 너무 아파서 좀 쉬고 싶었는데, 내가 약 먹고 빨리 학원에 가라고 보챘나 봐요. 그날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파서 얘기한 건데, 내가 막 화를 내면서 무조건 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대요. 하루 빠지면 학원비가 얼마냐며. 게다가 그날은 눈보라가 치면서 날씨도 몹시 추웠고, 바람도 무척 심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아이고! 몸도 아픈데,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사실 엄마들의 입장을 보면 집에서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모두 수용해 줄 경우, 과연 집안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엄마’라는 자리는 늘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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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픈 아이와 학원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고,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본 결과 아이가 자주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지 않는 이상 아프다고 했을 때 기어코 학원에 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엄마들은 그냥 쉽게 잊어버릴 이 같은 문제를 아이는 평생 가슴속에 상처로 담아 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