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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6.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2-10 경쟁만 부추기는 암담한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

 지금도 **고등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전체 등수별로 자리 배치가 되어 있다고 한다. 고로 누가 전체에서 1등 하는지, 꼴등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학교 측에서는 서로 경쟁을 부추겨서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한편으로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서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 봤다. 만약 우리 큰아이가 이런 학교를 간다면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어찌 됐건 이 학교는 명문으로 손꼽히는 일반 고등학교 중의 하나이다.   


 “저는 공부할 때 글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무조건 다 외웠어요. 모든 과목을 그냥 닥치는 대로 다 외웠죠. **외고의 경우, 특히 중국어과는 단위 수가 워낙 커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저도 지필평가 100점에 수행도 잘 본 것 같은데, B등급이 나왔더라고요. 지금도 왜 B등급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이 본인이 다니던 *** 중국어학원에 초빙되어 강의한 내용이다. 현재 **외고 중국어과를 목표로 두고 있는 큰아이가 이 학원에 다니고 있던 터라 엄마인 나와 겸사겸사 설명회를 듣고 왔다. 그때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는데, 이 대학생은 몸은 비록 약했지만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학생이 다닌 **외고는 학교 분위기 자체가 워낙 조용하고 공부하는 분위기라서 딱히 어딘가에 휩쓸리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위로하면서 열심히 공부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걱정이다. 만약 큰아이가 **외고에 합격했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지인도 아들이 **외고 출신인데, 중학교 때까지는 상위권 아이였다가 고등학교 때는 하위권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자주 숨이 막힌다고 하소연을 하는 바람에 자신은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입시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족들은 모두 입시생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다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하고, 집안은 그야말로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적막함만이 감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비단 대학을 바라보는 고등학생뿐만이 아니다. 중학생 아이들도 고등학교, 즉 국제고, 특목고, 자사고, 과학고, 영재고 등 특수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내신 점수를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 그러니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년 동안 아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름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수학’이라는 과목은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하나도 못 써먹을걸. 정말 짝짝 찢어 죽이고 싶어.”

 “오늘은 또 왜 이렇게 심술이 나셨어?”

 “정말이지 수학이 너무 싫어요.”

 “그래도 남들 다 하는 거 너만 안 할 수 없잖아.”

 “우리나라 교육은 왜 그런지 몰라요. 아니 굳이 문과 쪽으로 갈 사람들이 왜 수학을 해야 하냐고요.”

 “그러게 말이다. 그건 나도 불만이다.”

 “문과 쪽은 수학이라는 과목을 다 없애버려야 해요.”

 “그런데 공평한 게 이과 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국어를 하잖아.”

 “아무튼 우리나라 교육은 아무 쓸데없이 경쟁만 부추기는 썩어빠진 교육이라고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서도 학교 교육은 물론 학원 교육 모두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임을 알고 있다. 다만 학교 교육은 예전 주입식 교육을 탈피해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하고는 있지만 결국 대학이라는 관문 앞에서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창의적 수업이니 토론 수업이니 하는 것도 아이의 말에 의하면 결국 일부 아이들만 끌고 가는 수업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건대 우리나라 권력의 핵심인 기득권층 그리고 그 기득권층을 이루는 뿌리 깊은 학벌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교육 제도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따져 보면, 좋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가리는 것은 변별력인데, 그 변별력을 뛰어넘으려면 사교육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누가 받는가? 요즘 매달 학원비 나가는 걸 보면 무서울 정도다. 그나마 난 남편이 사업을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영어, 수학, 중국어 학원은 보낸다. 그동안 논술 학원도 꾸준히 보냈다가 요즘엔 끊은 상태다.


 문제는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다. 아무리 공부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라도 학원에 갈 돈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혼자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대치동에 있는 맞춤식 교육이니 클리닉이니 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차이가 심하게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 돈은 있어도 공부할 의지가 없는 아이들과 돈은 없지만 공부할 의지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 돈 없으면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이로 인해 좋은 대학도 가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기득권층을 바라볼 수조차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매번 교육 제도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해 본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학벌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늘 똑같은 대물림이 연속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다른 교육 선진국처럼 학벌 문화에서 능력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사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학력이다. 한 예로 단체 생활을 통해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빛은 학벌도 집안도 외모도 인격도 아닌 어디에서 드러나는지 모를 존재감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인 것이다. 고로 인재를 판별해 내는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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