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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7.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1 첫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

 좁은 배 속의 세상이 싫었을까? 내 배를 발로 차는지 머리로 차는지 배가 너무 아팠다. 그 순간, 이제는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시간이 됐음을 감지했다. 먼저 산부인과 병원에 예약을 한 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내진을 하는 상황에서 난 몹시 초조하고 불안했다. 옛 어르신들이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순간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로서는 노산에, 첫 경험인지라 혹여 잘못될까 봐 주위에서들 더 불안해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가 보인다고, 조금만 더 힘써보자고 다독였다. 정말이지 배 속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건지 새삼 내 엄마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응애∼ 응애∼” 거의 초죽음 상태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의사 선생님과 남편이 뭐라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남편이 나와 아기를 연결한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아기는 바로 내 배 위에 올려졌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내 아기를 보는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아기와 난 잠시 이별을 했다. 아기는 신생아실에, 난 산후조리원 병실에. 약 2주 동안 머물면서 이제 나도 엄마가 됐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 사랑스러운 아기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하는 책임감과 나의 또 다른 분신에 대한 설렘이 잠자고 있던 내 정신을 하나하나 깨운 탓에 오히려 몸 회복은 급속도로 빨라졌다. 사실 결혼 전에도 체력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좋았다. 잠을 겨우 3시간 자고 출근해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어 보인다며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으니까.  


 “아기가 너무 예뻐요. 피부가 어쩌면 이렇게 뽀얗고 부드러운지…….”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과찬까지 해주시고.”

 “아니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너무 사랑스러워요.”

 “다른 아기들도 다 예쁜걸요. 뭘∼”

 “제가 산후조리원 원장을 한 지 꽤 오래됐는데 이렇게 예쁜 아기를 본 적이 없어요. 저도 이런 아기 하나 있으면 당장이라도 키우고 싶네요.”

 “정말이지 별 농담도 다 하시네요.”


  그 당시 내가 입원해 있었던 산후조리원 원장과의 대화 내용이다. 그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내 배 속으로 낳은 아기를 보고 있노라면 매 순간마다 감동의 물결이 요동치곤 했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난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내 아기를 정해진 시간대별로 데리고 와서 수유를 통한 교감을 시도했고, 아기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내 품에 포옥 안겨 있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또 다른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사랑스러운 아가야

 너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그저 멍하니 있었단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너였기에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지

 그리고 생각했단다

‘너를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산후조리원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고 퇴실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난 아예 신생아실에서 내 아기를 데려왔다. 남은 며칠은 그냥 아기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사랑스러운 내 아기를 바라보면서 마냥 행복했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욕심이 다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갓난아기들은 자신의 몸을 아직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팔과 다리가 마구잡이로 움직인다. 그래서 마치 온몸을 이용해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면서 때론 다칠까 봐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아기가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팔과 다리를 아기 포로 포옥 싸매 줘야 한다.


 그런데 난 그 조그맣고 앙증맞은 내 아기를 답답한 아기포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엄마의 마음으로 아기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때는 5월이라서 날도 더운 데다가 뜨끈뜨끈한 산후조리원 방은 거의 찜질방 수준이었다. 그런데 헉! 양말까지 신고 있으라니……. 난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몸조리한답시고 더운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받는 게 과연 좋은 방법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때 내 아기도 너무 더웠는지 머릿속에 땀띠가 나서 짓무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여하튼 첫 탄생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감동의 나날을 보내게 해 준 내 아기에게 너무 감사했고, 집으로 가기 전날 밤, 나는 내 아기를 품에 뉘인 채 조용히 이런 노래를 부르며 잠이 들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보내는 이 한밤 잘 자라 우리 아가∼♬  


 그때는 몰랐다. 내 배 속에 있었던 아기가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하는 순간, 나만의 아기가 아닌 세상 속 또 하나의 인격체였음을 말이다. 그래서였을 게다. 어느 순간, 아이의 생각이 부쩍 커지면서 엄마는 그야말로 죄인이었다. 아이를 선택한 엄마와 엄마로부터 선택을 당한 아이와의 엄청난 충돌! 그것은 아이가 사춘기 때 “엄마, 나 왜 낳았어?”라는 말 한마디에 그 답이 있었다. 그동안 아이를 향해 휘둘렀던 ‘엄마’라는 권력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이었다.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면 아이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지 않고, 아이의 사소한 의견까지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멋진 엄마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배 아파 낳은 아기라고 절대로 내 소유물은 아니다. 나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아이에게 수시로 명령하고, 아이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으면 혼을 내고, 내 기분에 따라서 아이를 대했다. 만약 아이가 사춘기를 통해서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어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지금까지 똑같은 행동을 일삼으며 결국 아이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어떻게 보면 아이의 숨겨진 감정 덩어리를 볼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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