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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30.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4 어디를 가든 아우라가 펼쳐진 내 딸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난 다른 사람은 싫어 네가 아니면 싫어 I want nobody nobody nobody nobody nobody∼♪


 “저기 저 애는 도대체 누구야?”

 “누구?”

 “저기 왼쪽에서 세 번째, 하얀 얼굴에 하얀 머리띠 한 아이.”

 “그러게.”

 “춤, 정말 잘 추지 않아? 끼가 굉장한걸.”

 “저기 허리 돌아가는 것 좀 봐. 아이고! 너무 귀엽다.”

 “저 노래가 무슨 뜻인 지나 알고 춤을 추는 건지…….”

 “저 때 무슨 생각이 있겠어. 아무 생각 없지 뭐∼”


 첫째 아이가 5살 때,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가 열렸다. 그때 한창 붐을 일으킨 원더걸스의 ‘노바디’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관객석에 앉아 있던 두 엄마가 내 딸을 보면서 나누던 대화 내용이다. 그때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당시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내 딸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대의 주인공처럼 환하게 아우라가 펼쳐져 있었다. 엉덩이를 씰룩쌜룩하면서 예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부모들에게 있어서 무대 위 아이들은 모두 다 아우라가 펼쳐진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치원 때의 일이다. 공개 수업이니 체육 대회니 하면서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 유독 내 아이가 눈에 띄었던 것은 왜일까! 모든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바라볼 때면 다 나 같은 기분일까? 그 어디를 가든 내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항상 내 가슴속 깊이 서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내 아이만 보이고, 내 아이한테만 아우라가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을 게다. 여하튼 유치원에 갈 때마다 여선생님들이 아이를 꼭 껴안고 거의 쪽쪽 빨다시피 하면서 너무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난 항상 행복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풍요로웠다.  


 “아무개 어머님, 우리 유치원 들어오는 입구에 커다란 액자 보셨죠?”

 “네, 당연히 봤죠. 그 액자 안에 ***유치원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던데요.”

 “네. 그런데 아무개 사진을 넣을까 해서요. 유치원 정원 배경이랑 아이가 너무 잘 어우러져 예쁘게 잘 나왔더라고요. 혹시 어머님, 괜찮으신가요?”

 “와우! 정말요? 그런데 왜 우리 아이 사진을…….”

 “선생님들끼리 상의한 결과 그 사진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한번 바꿔 보려고요.”

 “그럼, 저야 감사하지요.”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왜 하필 우리 아이 독사진을 유치원 입구에 걸어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됐건 엄마인 나로서는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아갈 듯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고, 매번 차를 타고 그 유치원을 지날 때마다 내 아이가 찍힌 커다란 액자가 나의 마음을 항상 설레게 했다. 지금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련다. 환하게 아우라가 펼쳐진 그 중심에 자연을 벗 삼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맑고 순수했던 내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올라와 있다. 아마도 쑥 커버린, 다소 징그러운 아이들 모습이 낯설고 어색한지라 그야말로 품 안의 자식이었던 어릴 적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한없이 그리웠을 게다. 나도 가끔 남편이랑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펼쳐보곤 하는데, 그때는 왜 그리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며칠 전, 첫째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엄마들 모임이 있었다.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엄마들은 하나둘씩 주름이 늘어가고, 아이들은 벌써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다들 아직도 그 사랑스러웠던 아기 때의 모습을 잊지 못한 채 그 옛 추억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아니,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은 쌍둥이들 너무 귀엽더라. 도대체 언제 적 사진이야?”

 “아마도 2살 때쯤일 거야. 둘이 다정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기에 내가 뒤에서 살짝 찍었어. 기저귀 찬 엉덩이 너무 웃기지?”

 “요즘 엄마들 카톡 프로필 사진 보니까 대부분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이더라고.”

 “그 시절이 그리운 거지 뭐.”

 “나는 카톡 사진에 우리 아이 유치원 때 사진 올려놨거든. 이것 좀 봐봐.”

 “아이고! 귀여워라. 다들 이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왜 이러는지 몰라.”

 “그러게 말이야. 어릴 때는 환하게 아우라가 펼쳐졌었는데, 지금은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으니…….”

 “중학교 시기만 지나도 좀 낫지 않을까?”

 “아무튼 난 아이들 어린 시절이 너무 그리워.”


 그냥 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해지는 시절이 있었다, 내 아이가 어렸을 적에. 지금 생각해 보면,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아이의 소중한 어린 시절을 엄마인 내가 행여나 흠집을 내지는 않았는지, 내 욕심으로 아이를 끌고 가지는 않았는지 무척 조심스러워진다. 여하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따뜻한 엄마의 사랑을 듬뿍 심어주고 싶다.



 “어린 시절의 사랑스러웠던 내 아이, 그 시기가 그냥 후딱 지나가버린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뿐이다.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내 아이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것 같긴 한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고사리 같았던 아이의 손을 더 꼭 잡아줄걸……. 자그마했던 아이를 내 품에 더 포옥 안아줄걸……. 아이의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를 더 오랫동안 바라봐 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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