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May 01.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3-5 눈을 떼는 순간 발생하는 사건 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본 순간,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로 사색이 된 채 아이에게 잽싸게 달려들어 등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캑캑거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그때 나의 비명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뛰쳐나온 남편이 아이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목에 걸린 사탕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부짖었다.


 한 시가 급했다. 아이 목에 걸린 사탕을 빼내지 않으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런 급박한 상황이었다. 사탕은 점점 더 아이의 기도를 파고 들어갔고, 남편과 나는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의 두 발목을 잡아 높이 쳐들었고, 남편은 거꾸로 들린 아이의 등을 죽을힘을 다해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아이의 목에 걸린 사탕을 파냈다. 거실 바닥에 피가 낭자했다. 아이 입에서는 계속해서 선홍빛 피가 흐르고 있었고, 잠시 후 조그마한 구슬사탕이 아이의 목에서 톡 튀어나왔다.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빠져나간 혼이 다시 서서히 나에게로 들어오는 듯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이의 낯빛도 돌아오고 있었다. 그제야 남편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지, 지금까지의 상황이 그저 꿈처럼 느껴졌다. 두려웠다,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엄마의 촉이라는 것은 정말 정확했다. 거실에 앉아 있는 아이 앞에 사탕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나는 아이를 등진 채 주방 쪽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혹시 아이가 저 사탕을 까서 먹지 않을까? 저 사탕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이의 목구멍에 딱 맞을 만한 크기인데…….’라는 위험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설마’ 하고 돌아서는 순간, 아이는 이미 그 사탕을 하나 까서 먹었고, 곧바로 목에 걸린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예리한 촉은 불길한 예감과 딱 맞아떨어졌고, 이후에도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곤 했다. 물론 삶과 죽음을 오가던 위의‘사탕 사건’처럼 끔찍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아이가 세 살 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탕 사건’을 혹독하게 치르고, 4년 후 그러니까 6살 때 ‘노란 봉 사건’이 또 하나 발생했다. 첫째 딸아이의 경우, 아주 어렸을 때는 다소 여자아이다운 성향을 띠었다. 그런데 점점 본색을 드러내듯 남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를 즐기는 게 아닌가! 한 번은 빨간 슈퍼맨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두건을, 한 손에는 노란 긴 봉을 휘두르며 동생과 놀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의 대장이다.”

 “네, 장군님.”

 “너는 이 근처에 적군이 없는지 한번 살펴보고 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장군님.”

 “…….”

 “…….”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적군이 우리 쪽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알았다. 그럼, 우리도 싸우자.”

 “네, 장군님.”

 “자, 나를 따르라.”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곧바로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옆을 보니 한쪽 손에 들고 있던 노란 긴 봉 끝 부분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봉을 자기 딴에는 멋있게 휘두른다고 휘두르다가 순간 입속에 넣고 장난을 쳤던 것 같다. 혀 밑 연결 부분이 끊어져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장난으로 매번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첫째 아이로 인해 적어도 초등학교 전까지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너무 걱정돼서 부랴부랴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끊어진 부분을 딱히 붙일 방법이 없다며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그리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방문 영어 선생님은 오히려 영어를 발음하는 데 있어서 버터 발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려 줬다. 그러니까 굳이 영어 발음을 애써 굴리지 않아도 혀 밑의 특성상 저절로 굴려진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흔히 말하는 ‘웃프다’라는 말이 그때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의 마음을 내가 직접 엄마가 되어 보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우리 옛 어르신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 봐야 비로소 인생을 안다.”라고 말씀하신 게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문득 돌아가신 나의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도 그 옛날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여하튼 아이가 어렸을 때, 눈만 떼면 발생하는 사건, 사고로 인해 난 항상 아이 곁을 주시하면서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지만 이제는 육체가 아닌 마음을 주시하면서 혹여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항상 지켜보고 있다.


 나무가 말했다. “내 줄기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렴. 그러면 너는 멀리 떠나갈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고. 그러자 소년은 정말로 나무의 줄기를 베어 배를 만들었고, 곧바로 그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단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것이 바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애를 쓰는지 잘 모른다. 그저 부모의 희생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론 지치고 우울해질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하소연을 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경험을 통해 깨닫지 않으면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돌아가신 내 엄마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 때가 내 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너무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작가의 이전글 사춘기 엄마 처방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