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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Sep 25. 2021

티타임

손바닥소설-테라피,아내가 의심스러울 때



     

이사한 지 한 달 째다.

강줄기를 따라 그리 크지 않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이다.

나도 만족했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만족했다.

매일매일 들뜬 아침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아내는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갖는 것을 좋아했다.

출근 무렵 테라스에서 커피를 들고, 활짝 웃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직장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활짝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아내의 티타임 시간이 ‘차’보다 다른 것이 더 중시되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옷을 고르는데 옷이 좀 그렇다.

어디서 샀는지 레이스가 달린 흰색 블라우스, 중세 유럽인들이 입었을 법한 과장된 디자인이다. 그리고 평소엔 보지도 않던 책을 한 권 끼고 나간다.

제목이 더 미스터리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갑자기 사랑을? '정원 가꾸기'라면 몰라도.

어쨌거나 아내는 티타임 때마다 차려입고, 읽는지 모르겠지만 책도 한 권 챙겨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이사 온 후로 새롭게 생긴 취미생활이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의문은 있던 차에 ‘그’를 발견했다. 반대 편 강변 산책로를 강아지와 함께 걷고 있는 그는 산책할 때 입는 보통의 복장은 아니어서 눈에 확 띄었다. 

시골스럽지 않은 그의 외모 때문이거나 아내와 비슷한 복장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레이스는 아니지만 헐렁한 블라우스 같은 흰색 상의에 보기에 따라 약간은 민망한 검은색 바지. 스키니에 가깝다. 중세 유럽의 귀족이 일상복으로 입을 법한 옷이다.

뭐지? 하며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 머리도 짧은 단발 정도의 파마머리다. 선글라스를 꼈다. 

그 순간이 묘했던 건, 왜 아내와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가 이 시간에 걷고 있는지였다.

사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긴 하지만, 뭔가 있는 듯한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진한 홍차를 우려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어제와 같은 복장으로.

기분이 너무 좋아 보여 뭐라 말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 한참을 망설이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혹시 산책하는 남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민망한 호기심이 발동해 자전거에 올라 탄 채 기다렸다. 5분쯤 지나자, 그가 나타났다. 

‘지가 무슨 베르사체라도 되나, 매일 흑과 백이 군.’

걷고 있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아내가 앉아 있는 테라스 쪽을 쳐다봤다.

멀리 서지만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쯤의 분위기는 파악된다.

웃고 있다. 

그런데 일렬로 나란히 강을 바라본 타운하우스 테라스에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보였던 거다.

하나같이 차려입고. 정해진 이벤트처럼.

뭔가 개연성은 없지만, 관련성은 느껴졌다.


심란한 마음으로 일하다가 씁쓸한 마음으로 퇴근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티타임 말이야. 당신만 하는 게 아닌가 봐. 아침 출근길에 보니까 베란다마다 여자들이 나와 앉아 있던데. 차려입고.”

“그럴 걸. 이 마을에서 거의 모두 하는 일 이래.”

“응? 뭘?”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애 혹시 봤어? 참 잘생겼잖아?”

“애라고?”

“열여덟이래. 공황장애인가…그런 게 있대. 그래서 강아지와 함께 짧게 산책하는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비상 연락망을 짜고 길 따라 죽 지켜주는 거래. 테라스에 앉아서. 여기 사람들 참 따뜻하지?”

“아아, 근대 옷은 왜 그래?”

“옷?”

“당신 아침마다 입는 그 옷 말이야. 걔랑 비슷하던데.”

“아, 그거 그 애 엄마가 단체 주문해서 하나씩 나눠줬다네. 감사의 의미로. 디자인이 좀 난해하긴 하지?”

“아, 그렇군. 좋은 일이네.”

깔깔했던 입맛이 단맛으로 돌아오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너무 맛있다고, 연신 엄지손가락을 척척 들어 올렸다. 

“갑자기?”

아내는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거 맛있지? 이것도 무공해 유기농이야, 하면서 색색의 반찬들을 권했다.

그런 아내에게 이젠 요리 솜씨에 자부심을 가지라며 아부까지 떨었다. 괜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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