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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네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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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Nov 30. 2021

빨강을 사랑하는 방식

 명자 이야기


빨강을 사랑하는 방식     

-명자 씨가 들려주는 점순 이야기



점순 씨는 빨강을 사랑한다, 사랑했다

빨간 스카프, 빨간 원피스를 사랑하고 빨간 립스틱, 하다못해 빨간 양말까지 사랑한다 빨강은 적당한 습도처럼 간직한 그녀의 추억, 정교하게 맞춘 일조량 같은 그녀의 정성, 오랜 세월 길들여진 그녀의 손길로 세월이 흘러도 빨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빨간 스카프는 점순 씨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다 점점 헐거워지는 그녀의 목이 안쓰러웠는지 느슨한 포즈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옆구리가 벌어지는 빨간 원피스는 들숨과 날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빨간 립스틱? 그녀의 입술을 넘어 인중까지 침범했다   

   

점순 씨는 빨간 스카프를 개의 조각으로 잘랐다  

하양과 노랑과 파랑, 색색의 천들을 잘라 색스럽게 꿰매어 개의 빨강이 있는 개의 조각보를 만들었다 어떤 날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나 달빛에 잠이 들었다 개의 보자기를 만든 날, 그녀는 보자기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옅은 웃음에서부터 함박웃음까지, 속눈썹을 적시는 눈물방울에서부터 통곡의 짜디짠 눈물까지, 자잘한 신경질에서부터 뒷목을 부여잡던 분노까지 리본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모두 쌌다     

 

개의 빨간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선 점순 씨, 언젠가 보았을지 모를 점순 씨, 전철 안에서나 버스를 타고 지나며 거리에서 공원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백화점에서 시장에서 동물원이나 식물원에서… 빨강을 사랑하는 점순 씨의 보자기에서 삐죽이 나온 빛바랜 빨강이 툭 떨어질 때 우리는 점순 씨를 발견한다 빨강을 그토록 사랑한 점순 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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