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50분, 저녁 식사가 도착했다.
잡곡밥, 떡국, 민대구 양념찜, 돈육깻잎전, 아삭 고추장무침, 백나박김치, 다시마채액젓무침. 수술 전날 이번 주의 식단표에서 찍은 오늘의 저녁 메뉴이다. 맛나겠다. 일반 환자라면.
하지만 나는 수술을 끝내고 처음으로 먹는 밥. 밥 대신 흰 죽이다. 그리고 고기와 고추, 깻잎 등 강한 녀석들이 다 퇴장한다. 고기와 고추는 충분히 그럴 법하다 치더라도 깻잎이 빠지다니. 깻잎은 향이 강한 향신료. 순하디 순한 초록 잎사귀가 고추와 같은 취급을 받다니. 깻잎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침대 발치에 있는 식탁을 끌어올려 흰 죽이 담긴 식판을 올려 두고 제사상처럼 바라만 본다. 12시 반에 수술이 끝났으니 6시간이 지난 뒤 6시 반에 먹으라고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신신당부를 한다.
6시 30분.
이 글은 6시 30분을 애타게 기다리는 글이다. 밥이 문제가 아니다. 어제저녁 6시 저녁 식사를 마지막으로 24시간 만에 보는 밥이지만 밥보다는 물이다. 왼쪽 팔뚝에 연결된 주삿바늘을 통해 끊임없이 들어오는 링거액과 영양제 때문인지 배가 고프지는 않다. 무언가 내 몸속으로 들어가 나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물이 고프다. 인간의 몸은 70~80%가 물이라고 하는데 왜 이리 물이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물을 찾아가고 싶다. 링거액으로 수분도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만 나의 입술과 혀와 목구멍은 반기를 들고 있다.
물을 원한다. 간절히. 참을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병아리 눈물만큼 잠시 머금었다 헹구어 내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삼킬 때만 입안만 잠시 조금 나아질 뿐 뱉고 나면 바로 입 안과 목구멍이 온통 까끌까끌한 사막이 되어 물을 갈구한다. 물, 참 소중하다. 물 한 컵을 당장이라도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시원한 물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목구멍을 따라 천천히 흘러 내려가는 것을 바란다.
식판을 옆으로 밀고 물병을 앞에 세웠다. 6시 반 땡 하면 이 물병의 물을 다 마셔야지. 350ml를 담을 수 있는 물병에 지금 담긴 물은 250ml. 다 마실 수 있지. 아니 지금 가서 350ml 가득가득 물을 채워 올까? 아직 시간도 남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지만 역시나 귀찮구나. 주렁주렁 달린 링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코의 산소줄을 뺏다 끼웠다 하며 줄들을 엉키지 않게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좋다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을 먹는 것도 좋지 않겠지. 잠시 여우가 되어 신 포도를 걱정한다. 얄팍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낸다. '귀찮음'을 '중용'으로 포장하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중용'의 힘을 기르라고 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기적이다. 이리저리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갖다 붙인다. 지금은 250ml로 만족하기로 하자. 그리고 또 마시면 되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으려나? 벽에 걸린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6시 30분이 될 때까지 이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겠지.
물을 기다리며 글을 쓴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물을 마실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쓴다. 나는 이렇게 물이 내 앞에 있고 약속된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기다릴 법하다. 하지만 언제 내릴 기약도 없는 비를 무지개 보듯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어, 6시 반, 땡!
이제는 물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