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의 증언

by 미라




지난 계절 씀바귀가

결국 꽃피지 않기로 작심한 줄을

늦은 오월의 내 그늘이

꽃 빈 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 질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신새벽 처연한 척 신세타령을 구실로

흐드러지게 한 가락 하려고 찾아오던 박새나

매일 찾아와 보이는대로 싸잡아 빈정대지만

그냥 밤새 죽을만큼 외로웠었던 들토끼나

오래된 상처 자리를 핥으며 내 옆을 지나다

애써 평정심을 가장하는 고라니까지





나라고 예외일 리 없어서

세월을 깍지껴 껴안아 몸뚱이나 불리다

관절이 꺾이고 굳은살로 뒤덮이는 와중에

이 마을 사람들이 까맣게 잊어버린

오래된 서사시의 가장 아름다운 후렴을

때 되면 오월 이파리에 빼곡히 적어

바람이 보채면 못이기는 척 들려주곤 했었다





누구나 그저 자신이 할 일을

언제나처럼, 마치 처음 하는 것마냥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눈물겹게 해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독한 것, 꽃피지 않겠다니

기가 막혔다










고목의 증언

Lucca. Italy / 05.2022 / photo. M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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