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한다기 보다는 그냥 관심이 없고 친하지 않은 정도. 그래서 나는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다 동물을 '반려'의 존재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제인 구달같은 사람은 내게 경이와 경외의 대상이다. 일단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동물과 멀어진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그렇다고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나는 어쩌다 집안에 들어온 곤충류도 죽이지 않고 가볍게 싸서 밖으로 내보내는게 그 증거다. 그냥 지구상에 함께 살고있는 생물체 정도로 존중은 하고 있다.
최근 업무상 '홈케어' 방문을 하게됐는데 그 집에는 큰 개가 두 마리, 역시 작지않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사실 나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작업 규정상 방문시간에 앞서 이런 동물들을 못돌아다니게 할 규정이 있지만 그렇게 안한다고 요청하기는 좀 껄끄럽다. 세상엔 나같은 사람보다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아 보이니까.
첫 날, 온 몸이 검고 눈이 초록인 고양이가 내 주변을 얼쩡거렸다. 신경이 쓰이고 긴장이 됐다. 인터넷에서 어쩌다 보면 정말 인형같은 귀여운 고양이도 많던데 -그것도 그냥 멀찌감치 귀엽다할뿐 실제 앞에 있다면 난 가까이 못할거다- 이 고양이는 그렇게 귀엽지도 않은데 왜 계속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몇 번이나 내 다리를 스쳐지나가는건지. 아우 정말이지 섬찟했다. 바지에 털 붙으면 어쩌나 싶고. 고양이는 몸이 스쳤는데도 사람처럼 'excuse me' 도 할줄 모르네... 닿지 않도록 해라 좀...
다음 날 이른 아침, 이 집에 또 방문했을 때, 내가 돌보는 꼬맹이를 휠체어로 옮기기 위해 가지러 다가갔더니 어둠속에서 갑자기 '야옹~'하면서 초록의 눈을 빛내는 것이었다. 난 너무 깜짝 놀라 팔짝 뛸뻔했다. 까만 바탕색의 휠체어에 앉아설랑 보이지도 않아 몰랐는데 갑자기 초록눈과 '야옹~'이라니. 그러더니 이 녀석이 꼼짝 앉고 계속 앉아있는 것이었다. 나는 온 몸에 힘을 살짝 준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초록눈에 내 눈을 부라리며 '저리 안가?' 하는 메시지를 쏘아보냈다. 들어올려 내려보낼 수 있겠지만 아, 나는 고양이를 차마 만질 수 없는 몸이 아닌가. 결국 꼬맹이의 할머니가 처리해줘서 난처한 순간이 지나갔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끔 그 눈빛과 소리가 떠오르며 궁금해졌다. 걔는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거 같잖아? 그럴 가능성이 있나? 고양이가 사람한테 말을 건다고?
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게 말을 건게 맞다며 만져달라는 거란다. 아, 나 그거 절대 못하는데... 다리를 스쳐지나가는 느낌도 얼마나 싫었는데...물컹한것이 그냥...으... 딸이 덧붙이기를, 고양이의 성정은 강아지와 또 달라서 냉정하고 쌀쌀한데가 있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거란다. 그래? 그렇다면 미안한데...나는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검은 고양아...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고 어제 오랜만에 그 집을 방문했다. 그 고양이가 예의 눈맞춤과 소리로 다가와 또 내 다리를 스치더니 이번엔 바로 내 앞에서 두 앞발을 들어올렸다. 어마나 이건 또 뭐야. 동물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건 위협의 메시지는 아닌게 분명해 보이지만 이럴 때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지조차 나는 몰랐다.
꼬맹이를 옮기기 위해 휠체어를 침대 가까이에 댔는데 이번엔 이 녀석이 휠체어의 가장 높은 부분인 손잡이 부분에 사뿐하게 올라와 앉는 것이었다. 이젠 마루바닥에서 서성거릴 때보다, 휠체어 의자부분에 웅크리고 있을 때보다 나와 엄청 가까워졌다! 그것만해도 놀라운데 갑자기 제 얼굴을 내 팔에 비비는 그 행위는?!
네가 오늘은 진도(?)를 나가려고 작정을 했구나... 꺼리는 마음도 있지만 고양이의 애정행각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에 대해 좀 더 난감했다. 만져달라는 거라는 딸의 말이 떠올라 시도해볼 마음이 일어났지만 맨 손으로는 엄두가 안나서 벗어둔 외투 주머니에서 장갑을 가져와 끼고는 엉성하게 쓰다듬어 줬다. 친밀감 떨어지고 어설픈 스킨쉽일지라도 나름대로 예의치레를 한답시고.
그 집에서 나와 하루를 지내던중 문득문득 그 녀석이 떠올랐다. 작지도 않은 크기, 검은 털 색깔, 눈의 색깔 등. 치이 이쁘지도 않은게... 그리고 생생하게 동영상이 재생이 되곤했다. 그 녀석의 움직임, 몸놀림, 나를 응시하는 눈 빛, 소리, 내 다리를 스치는 느낌, 내 팔에 얼굴을 문지르는 모습... 아 이거 뭐지?
이런 내게 스스로 당황스러운 가운데 나는 지금 몹시 궁금하다. 내가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