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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Feb 18. 2024

싱크대에 찾아온 봄

올 겨울은 캐나다의 겨울답지 않게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 2월 들어 기온마저 포근해 이대로 힘없이 겨울의 기세를 떨쳐보지도 못한채 봄에게 밀려나려는가 싶었다. 그건 결코 캐나다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요즘 전 지구의 날씨가 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래도 초록은 아직이다. 


어느날 설거지를 하던중 씽크대에서 이게 뭐야 싶은게 눈에 띄었다. 싱크대 닦는 수세미에 실같이 가느다란 것이 몇 가닥 서있는 것같이 보였다. 뭐가 묻었나 싶어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 정체는 싹이었다. 아직은 어디에서고 초록의 싹을 볼 시기는 아니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 싹을 만나다니. 


그런데 이게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엉뚱하게도 내 머리속엔 구닥다리 드라마의 흑백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비혼의 젊은 처자가 임신을 하여 집안 어른들 발밑에 무릎끓고 있고 완고한 표정의 어른들이 '어서 바른대로 이르거라. 누구의 씨냐' 하면서 추궁하는 장면같은. 


그러면 이 싹은 누구의, 아니 무엇의 씨일까. 먼저 가능성을 짚어보자. 우리집 주방에 씨앗 형태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참깨. 그런데 열을 가해 볶았는데 싹을 틔울 수가 있을까. 그 다음은 치아씨. 내가 가끔 집에 있는 과일과 함께 치아씨를 요구르트에 넣어 먹는 것이 생각났다. 작디 작은 씨앗들이 남김없이 내 뱃속행을 하지 못하고 그릇에 붙어있다가 설거지의 과정을 거치는동안 문질러지고 위에서 퍼부어대는 폭포수와 쓰나미속에서도 모두 배수구를 통해 쓸려내려가지 않았다? 살아남은 몇 개가 싱크대 어딘가 표류하다가 어찌어찌 수세미에 안착했을 수도 있겠다. 


여리디 여린 싹의 줄기는 어떻게 곧추 서있을 수 있는가 신기했다. 싹을 발견한 순간부터 수세미는 수세미가 아니었다. 마치 나는 유산기 있는 초기 임산부 대하듯 하였다. 한쪽에 잘 모셔두고 싱크대 닦는 본연의 직무를 면제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물이 닿고 하는동안 싹이 났는데 오히려 치워두면 물기도 없어서 싹에는 이롭지가 않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물을 튕겨도 줘봤다. 


보도블록 틈새에도 초록이 올라오는 걸 보면 신기했던 생각이 나서 역시 생명력이란 대단하네 어쩌네 흥분해서 호들갑을 떨면서 새 생명의 소식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아들내미 왈, 


"우웩~ 그럼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온거잖아~" 


나의 생명에의 순수한 기쁨을 확 깨는 소리를 했다. 

흠~ 그렇게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한 순간에 이 싹은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음식물쓰레기의 씨'로서 천한 신분의 식물이 돼버렸다.  


연꽃은 진흙속에서도 제 몸을 더럽히지 않고 피어나 더욱 고결한 이미지로 대접받거늘 치아씨는 어쩌다 싱크대에 있는 수세미에 떨어져 더러운 취급을 받는구나.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태어나는게 일생을 결정하는 것은 비단 인간뿐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수세미에 몇 개 떨어져 싹이 난들 꽃을 피우고 종국에 씨를 생산할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적극적으로 살생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보살피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일단 그들이 생명을 틔울 기반으로 택한 수세미는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 너희들 치아씨의 운명은 어찌 이리도 기구한 것이냐. 고작 수세미를 비빌 언덕으로 점찍다니. 오호 애재라.  


나는 이 몇 알의 치아씨를 통해 확인했다. 인연이라는 귀한 깨달음을. 치아씨는 고 작은 몸집안에 큰 가능성과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무엇으로 변할지 모르는 큰 뜻. 그 '인(因)'이 배수구에 휩쓸려 가서 온갖 것이 뒤섞인 더 크고 거센 흐름에 계속 떠다니며 시달리지 않고 누추한 곳이지만 가만히 안착해서 생명을 이어갈만한 토대인 '연(緣)'을 만나 싹을 틔울만한 조건이 충족이 될 때 마침내 '인'이 싹이 트는 이 극적인 실현! 

 

싱크대에 때이르게 살짝 찾아온 미약한 봄을 맛보았다. 초록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확실히 봄을 예감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유전자처럼 고유한 내 안의 씨앗에 대해서 곰곰히 성찰해 보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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