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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Jul 31. 2024

메이드 인 캐나다

내가 일하는 시니어홈에는 주로 노인층이고 그 연령폭은 꽤 넓다. 이르면 50대 후반부터 100세에 이르니 그들의 양상은 각양각색이다. 헬렌은 인지기능은 멀쩡한데 여러 고질병과 신체 기능의 퇴화로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70대 여성이다. 치매 없이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생활해야만 하는 처지는 어쩌면 형벌이 아닐까. 불편한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어도 제 팔 하나를 뻗어 해결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른 사람의 자의식이 어떨지는 짐작은 가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핼렌은 그래서 언제나 콜벨을 가까이, 아니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누르기가 가능한 특정 손가락 아래 버튼이 닿도록 쥐어 주어야 하는 환자다. 그는 자기 나름의 취향대로 루틴과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뭔가 위엄마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날 결심을 했다. 이른바 죽을 결심. 


사람들은 흔히 '안락사'하면 스위스만을 떠올리는데, 캐나다는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처럼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이다. 이곳에서의 정식 명칭은 의료조력사(MAID; Medical Assistance In Dying)라고 한다. 정부에서 명시한 자격조건에 부합하는 경우 신청해서 절차를 밟아 진행되게 된다. 18세 이상 정신적으로 온전한 판단기능을 가진 자로서 말기암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극심하고 회복될 수 없는 통증이나 질병의 상태에 있을 경우 해당된다. 따라서 치매환자의 경우는 해당이 안되는 것으로 안다. 


나는 헬렌이 '메이드'를 담당의사에게 상의하고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생각했다. 뭐든 신속하게 되는 경우가 없는 이곳 캐나다에서 헬렌은 아마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마치게 될 것이라고. 결국은 내 예상대로 헬렌은 자연적으로 명을 다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그의 '안식'을 빌었다. 


한참 지난 후, 나는 두번째 '메이드'를 경험하게 되었다. 린다는 60대 후반의 여성으로 중추 신경계의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앓으면서 늘 극심한 통증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자주 접하는 환자는 아니라서 사실만 알고 있다가 어느날 '집행'이 되었다. 너무 놀란 것은 늘 누워있던 자기 침대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주사약이 환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주사를 맞고 뜻한 바대로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눈을 감는 것. 

안락사의 대명사처럼 돼있는 스위스에 직접 가는 것처럼, 나는 캐나다내에서 일정 장소에 가서 행해지는 것이 아닐까 여기고 있었다. 일은 오래 걸리지 않고 마무리된다고 들었다. 그렇겠지. 아, 그런 것이로구나... 막연히 충격이었다. 


이제 곧 나는 세번째 '메이드'를 겪게 된다. 패트리샤는 딱 70세가 된 여성이다. 역시 몇가지 회복 불가능한 질명을 갖고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우울증을 동반한 경우인데 그녀 또한 인지 기능이 명료하고 단정한 성격과 스타일을 지녔다. 규정에 따라 담당의사와 몇차례 상담하고 의뢰받은 전문의가 방문해서 상담하고 신청 절차를 거치는 것을 지켜봤다. 


정신질환자도 대상이 되는 네덜란드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2027년까지는 정신 질환의 경우 요건에 부합이 안된다고 한다. 패트리샤의 경우 우울증으로는 신청자격이 안되지만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자격조건을 갖춘 경우다. '메이드'는 선착순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예측하기를,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중 그녀의 'd-day'가 통보되었다! 아, 결국은 되는구나. 이번에도 조금 충격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이삿날을 정하고 결혼 날짜를 정하고 요즘은 아기가 태어나는 날도 정해서 행해지기도 하지만 '죽을 날' 받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소식을 들은 패트리샤의 반응은 기쁨이었다고 들었다. 일이 진행되고 있어서 기쁘다...는. 


가족들은 이 사실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고. 왜 안그렇겠는가. 이런 경우 간호사로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참 난감하다. '그런 생각을 왜해요~' 할 수도 없고, '잘 생각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8월 말일로 날 받아놓은 패트리샤는 여느 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약을 먹고 머리핀을 꽃아 머리를 매만지고 볼터치로 마무리되는 엹은 화장을 하고, 아침이면 휠체어에 앉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침대로 가는 일상. 


약을 주러 그녀의 방에 가면 그녀는 사진들을 늘어놓고 정리인지 감상인지 모를 일들을 하고 있다. 그저 바쁜 나는 오래 머물지도 못하지만 한번씩 그녀의 젊은 시절,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긴 사진들에 눈길을 조금 길게 준 뒤 한마디 건넬 뿐.


여기 당신의 좋은 삶이 있네요... 


모르겠다. 평소 내 삶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고 실제로 만일 내가 그녀들처럼 되는 경우를 상상해보면 그게 여전히 맞긴 하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그런 결정을 한 사람을 보고, 그의 하루하루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꼭 그게 맞는건가 싶어지기도 한다.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의 결정을 결코 기쁘게 반길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내 가족이 그런 결정을 한다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남아있는 나날들에 평안을 빈다. 잘 살았노라고 확신만이 가득하길. 


(후에 덧붙임. 그녀는 받아놓은 날, 그 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지내온 방의 침대가 아니라 병원에 가서 그녀가 선택한 죽음을 맞았다. 왜냐하면 장기기증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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