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Nov 01. 2024

장기말은 묵묵히 장기판을 지킨다

자연에는 음지와 양지가 있다. 양지는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음지는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보기에도 그렇지 않나. 양지는 화사하고 따사로운 반면 음지는 축축하고 음습하고 칙칙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도 양지와 음지는 존재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 또는 조직이나 장소가 있다면 그것을 존재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사람이나 조직, 장소들이 있는 것이다. 신분이나 계급, 또는 계층의 측면도 있고 다만 일의 특성이 그런 측면도 있다. 


영화에 자주 본 바 있는 국정원의 원훈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고 한다. 양지를 지향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음지에서 일한다고 함은 희생과 헌신을 마다 않으며 일한다는 뜻이 담긴 듯하다. 설마 국정원의 특성상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뜻만은 아니리라. 


세상엔 그런 사람, 직업, 조직 등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전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번역해서 헝가리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수여받은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연구교수는 말한다. "나는 음지의 연구자, 남들이 가지않은 길 가겠다"고. 음지를 '마다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기꺼이 음지를 지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해본다. 혹시 간호사도 세상에 음지에서 일하는 직업중 하나가 아닐까. 그것은 직업 특성상 그러한 것인데 이것을 양지에서 못하니까 음지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최근 알게됐다. 한국의 의사협회 부회장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한국에서 간호법이 통과된후 간호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 하면서 한말씀 하신 것.



어느 날 밤 근무를 할 때였다. 한 환자의 방에서 콜 벨이 울렸다. 오줌이 마려운데 오줌이 안나온다고. 만져보니 배가 단단했다. 쳇, 오줌따위 더럽고 하찮은 것을 내게 이야기한다고? 아니다. 간호사에게 그들의 오줌은 중요하다. 우리 몸안에서 오줌이 만들어지고 몸밖으로 원활하게 배출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몸소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관심을 기울여 원인을 알아봐야 하겠지만 일단 당장 오줌을 빼내야 한다. 


방광을 스캔해보니 900ml의 오줌이 차 있었다. 스스로 못 누니 카테터라고 하는 가는 관을 삽입해 빼낼 수 있다. 자, 이때 '장기말 주제'는 혼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없다. 반드시  '플레이어'의 처방이 필요하다. 자정 무렵의 시간에 온콜 닥터로부터 카테터 사용을 처방받아 1리터의 오줌을 빼내고 역시 처방대로 소변검사를 위해  채취된 소량의 오줌은 랩실에 보내졌다. 환자의 배는 곧바로 말랑말랑한 상태로 줄어들었고 환자는 이내 잠에 빠졌다. 


이런 경우가 아니어도 '장기말'은 환자의 오줌의 양이 충분한지 맑은지 색깔은 어떤지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혹시 그렇다면 환자가 소변볼 때 통증은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 이때 문제가 있다면 '플레이어'에게 특정의 분부를 내려주십사 아뢰어 명령을 받잡은다음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수행해야 한다. 


앞에 언급된 '플레이어'라면 '처방'을 의미하는 '오더'도 소싯적 영어 단어장에 나오는 뜻 '명령'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명령'을 받들어 장기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 사는 맛이 나는 부류일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나 인격 함량 미달의 인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그의 인성은 그렇다치자. 함께 일하기에 -함께? 이 분에겐 이 말도 '건방지'게 들리리라. 어디 감히 의사와 간호사가 '함께' 일한다고 하는가 하면서 - 유쾌한 사람이 아닌정도로. 내가 이곳 캐나다에서 이런 부류의 의사를 못만나 보았지만 왜 없겠는가. 


그런데 특권의식에 쩔어서 함께 일하는 -아차, 또 실례를 범하였다- 간호사에게 권위적이고 교만한 의사가 과연 환자를 대하는 입장은 어떠할 것인가.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인간적인 연민 하나 없이 '나 아니면 너는 죽어'하는 우월감으로 환자를 대한다면...


그만 징징대세요. 

그럴거면 병걸리지 말든가. 아니면 퇴원을 하시든가. 

아픈 주제에, 죽어가는 주제에...

불쌍한 것들. 


한국 의학드라마에 나올법한 모습에만 한껏 취해서 사는 의사가 아닐까 싶다. 하얀 가운 폼나게 입고 양옆에 죽 수하들을 거느린채 환자 회진하러 병원복도를 폼나게 누비는 모습 있지 않은가. 거침없이 환자앞에서 배우는 수련의들을 면박주면서 실력있는 의사의 면모가 부각되는 캐릭터 말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간호사 일을 하다가 캐나다에 온 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끔은 환자로부터도 이와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조금 더 공부해서 의대가지 그랬냐는. 간호사는 능력이 딸려 황새가 되지못한채 살아가는 서럽고 억울한 뱁새가 아니다. 환자의 바로 곁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 상태를 살피고 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 온 세상 곳곳에는 묵묵히 장기판을 지키는 장기말들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이드 인 캐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