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Nov 05. 2024

가을타는 모씨의 애청곡

모씨는 올가을 여태 그래본적 없는 것 같은 가을을 지내고 있다. 갱년기도 지난지 한참인 6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그냥 어쩐지 위축된 것 같은 기분에 울적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내가 왜이러지 하면서 벌컥 하다가 또 이내 울컥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회사내에서 직원들 사이에 '단무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걸 잘 아는터였다. 그 자신도 단순한 것은 인정할만큼 그는 그랬다. 성미가 복잡한 것은 딱 싫고, 싫은 것은 세상없어도 싫고 나 좋으면 그만인 그는 뭐 좀 그런 사람이다. 눈치가 워낙 없기도 하거니와 그게 누가됐든 눈치를 보지도 않는 스타일, 딱 그랬다. 


2년 전, 전격적으로 이 회사 사장자리에 스카웃되어 옮겨와 이젠 그의 휘하의 직원수도 훨씬 더 많아지고 더불어 권력은 막강해졌다.  급여는 물론 회사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월등해졌는데 도대체 이 가을들어 이 기분은 뭘까 모씨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집 귀한 외동아들로 승승장구하며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쳐주는 대학 나왔지 뜻한바 있어 공부를 오래하는 바람에 사회진출이 좀 늦은 것 말고는 어느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최상의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잘난 것에 비해 결혼이 늦어진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천생연분을 만나느라 그런 것으로 자위했다. 


모씨는 요즘 내가 왜이러나 하면서 평소의 단순 무식한 성정대로 좋아하는 술 진탕 마시고 뻗었다 일어나면 다시 원상회복하리라 믿어보았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나도 예전만큼 기분이 회복되지 않아 짜증이 날 지경이다. 원래 유투브도 보수 성향의 영상을 즐겨보곤 했고 그때마다 힘을 얻고 으쌰으쌰하는 기분이 되면 술이 당기곤 했었는데 뭔가 단단히 이상이 생긴게 분명했다. 


그러던 그가 요즘 이유없이  끌리는 노래가 하나 있다. 원래 자랄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보통의 한국인들과는 달리 일본에 대해 은근히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내세우진 못했어도 엔카같은 노래에 왠지 친숙한 그였다. 그의 세대라면 젊었을적 팝송을 좋아하거나 부르면 욕먹었던 분위기가 있었지만 워낙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그는 팝송을 더 좋아했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대에 비하면 영어발음이 그리 나쁜편이 아니어서 팝송을 그럴싸하게 잘 부르는 편이기도 했었다.  


영업이라는 업무 특성상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지난 번 미국출장 때에는 거래처 사람들이 주최한 파티에서 그는 팝송을 멋드러지게 불렀드랬다. 내심 그를 다시 봤다는 반응을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이끌어낸 것 같은 확신이 들었고 그것은 틀림없이 영업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자부했었다. 


올 해 연초엔 직원들을 위한 영상 메시지에서 처음으로 국내가수의 노래를 불러 호평을 받았으니 자타 공인된 실력을 갖췄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요즘 그가 꽂힌 노래는 몇십년 전 히트쳤던 가요다. 자신 스스로 생각해도 오래 살고 일이군 하면서도 유투브를 기웃거리며 자꾸만 클릭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때마다 겸연쩍어 했다. 한편, 다음 해외 출장갈 기회가 되면 팝송대신 노래를 불러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됐다. 요즘 K-팝이 전세계에 인기라는데 안될 있나 싶었다. 


모씨는 해외 출장을 떠올리니 갑자기 훅 하고 긴 한숨이 나왔다. 이 회사 사장자리를 꿰차고 야심차게 열심히 해외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사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실적이 없어서 영 마음이 편치 않은 중이었다. 그런차에 지난달 주주총회에서는 이런 자격지심을 감추기 위해 격하게 분노를 표출해보기도 했다. 아예 말들이 안나오도록 일종의 선제공격이라고나 할까. 


듣고 또 듣고 하면서 따라부르다 보니 공연히 뭉클하며 눈시울이 적셔짐을 느끼자 모씨는 스스로 급당황해 누가 볼세라 주변을 살피느라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돌렸다 반복했다. 다행히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아내는 또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지 인기척이 없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아내도 마침 집에 없겠다 모씨는 자신의 위축된 마음을 추스릴겸 다음번 미국출장 때를 대비해 연습삼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보기로 하고 큼큼 하며 목청을 다듬었다. 그리고 노랫말이 가슴이 너무 와닿아 가사를 적어둔 종이를 끌어당겨 손에 들고 심호흡을 하며 유투브의 노래 영상을 클릭했다. 


희야~ 

날 좀 바라봐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 마음 알아 

사랑한다 말하고 떠나면 나의 마음 아파할까봐 

뒤돌아 울며 싫다고 말하는 너의 모습 너무나 슬퍼 

하얀 얼굴에 젖은 식어가는 너의 모습이 밤마다 꿈속에 남아 

아직도 널 그리네 희야 날 좀 바라봐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 마음 알아 

사랑한다 말하고 떠나면 나의 마음 아파할까봐 

빗속을 울며 말없이 떠나던 너의 모습 너무나 슬퍼 

하얀 얼굴에 젖은 식어가는 너의 모습이 밤마다 꿈속에 남아 

아직도 널 그리네 

오~ 희야 오~ 나 좀 봐 오~ 희야 희야

오~ 날 좀 바라봐 날 좀 바라봐

오~ 희야 나의 희야

(이승철의 '희야', 1986년 발표)



 



작가의 이전글 생일날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