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아무렇지 않아 진 날

by mingdu

올해로 결혼 9년 차.
남편의 본가, 그러니까 나에게는 시댁인 그 집은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1년에 두 번 제사를 모시는 집이었다.
결혼 초에는 평일에 제사가 있으면 연차나 반차를 써가며 참석했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밤늦게 제사를 지낸 뒤 돌아오던 날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이가 생긴 이후부터는 시어머니께서 제사를 생략하셔서 명절에만 차례를 지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명절은 늘 쉽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곧바로 나의 친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친정까지 이동하는 일정.
회사에 출퇴근하고 육아를 하는 일상보다 명절이 더 고된 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는 가족들과 여유롭게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아니면 온전히 집에서 쉬는 명절을 늘 상상하고 원했다.
아마 이런 감정이 ‘명절 증후군’이나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로 표현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오면 2주 전부터는 괜히 예민해지고, 이유 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끔은 남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8~9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신기하게도 명절이 아무렇지 않았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낯설었다.
음식을 준비할 때도, 차례를 지낼 때도, 여러 곳을 이동할 때도 마음의 파도가 크게 일지 않았다. 잠자리가 불편해 잠을 설친 정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것은 집에 돌아와 편히 자면 해결될 문제였다.


참 신기했다.
시간이 준 변화일까.
아니면 요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일구어가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일까.
아이의 초등학교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일까.
곧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는 안정감 때문일까.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국 어떤 일이든, 그 무게는 내 마음이 정한다는 것을.
앞으로 몇 년간 명절의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면, 그 시간은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편안하고, 어쩌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명절은 그렇게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