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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 ep 2

엄마로 만난 사람들

by mingdu

나는 흔히 말하는 MBTI의 E 성향이다. 그런데 엄마가 된 이후, ‘E’는 어딘가 사라진 듯했다. 누군가와 친분을 쌓는 일이 갑자기 너무 어렵고 낯설어졌다. 왜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 시국 전이라 다들 조리원 동기를 만들고, 힘든 신생아 시절을 같이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조리원 내 방에서 가족, 친구들과 연락하며 보내기 바빴고 잠시 나와서 식사를 하는 시간마저 혼자가 편해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신생아 시절, 아이 엄마로는 어떤 친분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돌이 지나서 재취업을 확정 짓고, 가정 어린이집이라는 기관에 보내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탓도 있지만, 같은 반 엄마가 번호 교환을 요청해 오고 간간히 연락을 하였지만 형식적인 이야기만 조금 나누고 따로 만나거나 교류를 가지지는 않았다. 문화센터도 다녀봤지만 이상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먼저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은 평소 나답지 않게 무척 어려워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고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규모가 더 큰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가 다니게 되었다. 상황은 비슷했다. 나는 회사를 다녔고, 친정 엄마가 하원을 시키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케어해 주셨다.

4세 반까지만 있는 어린이집이라, 기관에서의 마지막 해가 되는 때였다. 친정 엄마를 통해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가 내 번호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8명 정도가 있는 단체방에 초대받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불안함, 거부감 같은 감정이 더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녀들은 내가 본 시선에서 이미 친밀해 보였고, 이야기 내용들이 나에겐 생소한 부분들도 많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가끔씩 채팅방에 나타나 한 마디하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했다. 주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잘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을 4개월여 앞두고 부모참여수업이 끝난 후 처음으로 엄마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근처 키즈카페를 대관해서 아이들은 친구와 놀게 하고,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나를 제외하고 다들 친한 느낌이어서 조금 어색했지만 결국 대화주제가 아이들이다 보니 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워킹맘이어서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지나친 나의 걱정과 긴장은 그렇게 키즈카페 2시간 만에 완전히 무장해제 되었다.


그 뒤로 우리는 잦은 만남을 하게 되었다. 육퇴 후 엄마들끼리 동네에서 만나서 술도 한잔 하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 모임은 점점 가족 단위로 커지게 되고, 어린이집 졸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 해 가을에는 12명 가족 중에 10명의 가족이 1박 2일로 펜션을 가게 되었다. 무려 35명 정도의 대이동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연차를 내거나 운영하는 가게를 닫고 가야 하는 여행이었다. 사실 추진해 보자고 말할 때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지만 행동파 엄마들이 많은 집단이었기에 우리는 해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제2회 단체 여행이 또 성사되었다.

아이들이 다른 유치원을 가고, 몇 명은 이사도 갔지만 오히려 어린이집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느새 소모임처럼 몇몇 가족끼리 만나기도 하고 여행도 가고, 엄마들 모임이 있는 전날이면 아빠들 단체방에서 "우리도 만나자!" 하면서 아빠들 모임도 성사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엄마로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깰 수 있게 해 준 엄마들에게 정말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 그런 만남을 통해 아이는 물론이고, 아이를 통해 나까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 맘이 아닌 언니라 부르고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나의 사람들이 된 것 같다.

여전히 우리는 각자 워킹맘으로 자신들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내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 아이를 잠시 맡아줄 수 있는 언니들, 가정에 고민거리가 있을 때 언제든 나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언니들이 있기에 생각만으로 마음 한편에 항상 위안과 위로가 된다.

아이들이 커서도 이 관계가 계속 유지될 거라고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일과 육아의 양립이 힘들었던 나의 시간에서 가장 의지가 되었던 사람들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기억만큼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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