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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06. 2020

세상을 만드는 자가 되려면?

사랑이라는 연료를 손에 꼭 붙잡고

나는 ‘생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살아있는 기운. 설렘과 기쁨, 열정을 비빔밥 만들 듯 섞어 놓은 느낌이 드는 단어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사람의 눈빛과 표정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푸른 꿈이 무성했던 20대의 어느 날, 아침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과 겹쳐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했던 그날 아침 지하철. 그 날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지친 눈빛과 표정. 물 없는 사막처럼, 그 날 그 곳에는 생기가 없었다. 


아침 출근 길 지하철 안의 수많은 지친 사람들을 보며, 두려웠다. 나의 하루도 곧 그렇게 시작될 까봐. 매일을 설렘과 기쁨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돈 벌려면, 어쩔 수 없어. 돈을 벌려면, 당연히 이래야 돼. 피곤하고, 표정은 점점 없어지고, 짜증도 점점 늘어나고. 어쩔 수 없어. 그게 세상 이치야.’ 마치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신이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유일까 궁금했다. 우리는 삶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그 대부분의 시간을, 열정 없이, 단지 돈을 벌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가슴 뛰는 삶을 포기하며 보내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정말 그게 신의 뜻일까. 신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신의 사랑일까.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삶은 진짜 그런 게 아닌 게 아닐까. 



사랑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삶의 진실이라고 나 자신이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그것이 진실인 양 내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의 새로운 진실을 창조하면, 그것이 내 삶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기 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진실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가슴. 나의 영혼. 나의 고요한 공간 안에 모든 답이 있다. 세상이 가르쳐준 답이 아니라, 내 안의 진실을 찾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신의 축복을 충만히 즐기는 길이다. 


꿈을 즐기는 법은, 어떤 목적지에 도착지에 도착했을 때 그 한 순간이 아니라,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힘을 내고 다시 일어서는 그 순간 하나 하나의 기쁨을, 그 순간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 있음을, 희미한 안개 속에서, 때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영혼의 답을 찾는 그 환희에 있음을, 그것이 꿈을 가진 항해자의 진정한 기쁨임을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안다. 


두려움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슬픔은 기쁨을 위해 존재하고, 좌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존재함을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꿈을 선택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로 존재함을 안다.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결과, 그 보상이 아니라, 절대 지치지 않는 뜨거운 사랑이 꿈이 현실이 되는 진정한 연료임을 나는 안다. 



사랑이라는 연료를 손에 꼭 붙잡고, 눈에는 생기를 가득 머금고, 신나게 이 꿈의 항해를 계속 하고 싶다.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 삶이 다 하는 순간까지 설렘과 기쁨, 열정을 만끽하다 떠나고 싶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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