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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_복효근

by 하나부터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_복효근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 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시를 읽다 보면, 자꾸 한 얼굴이 떠오른다. 건강한 빛을 띤 피부, 동그랗고 서글서글한 눈을 한 아이.

요즘 부쩍 결석이 잦더니, 며칠 만에 사복을 입고 나타났다. 집을 나왔다고.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 살 거야?” 그 물음이 싫었다는 아이. 누구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나이는 아니니까. 공원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동이 틀 무렵 학교로 왔단다.


밤공기가 얼마나 차가웠을까. 깜깜한 공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이 세상 어디쯤에 자신이 있어야 하는지 별에게 물어보진 않았을까. 한기 어린 세상에 던져진 현실을 원망하지는 않았니. 그래도 마음 둘 곳이 이곳이라서 문을 두드린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하나.


집에는 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말로는 그러셔도 얼마나 너를 걱정하시는데. 추운데 그러고 다니면 어떡하니." 위로의 말들은 허공에 흩어졌다.


"아이가 어제 집에 들어가지 않은 건 아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답들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참는 건 어른이, 품는 건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인데 세상은 자꾸 그 순서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둠이 짙던 그 밤, 아이 곁에는 ‘선재들’이 있었다.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함께 한 아이들. 집을 잃은 친구 곁에 앉아 체온을 나누는 선재들의 마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너희 큰일 나. 절대 그러면 안돼."

위험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내 안에는 그 아이들이 나눈 온기가 오래 남았다.


세상 어딘가엔 아직 붕어빵의 온기가 남아 있다.

오늘의 찬 기억이, 언젠가 그 아이 마음 안에서

열네 살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으로 데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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