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장 이기적인 네 가지 확실한 이유
윤홍균 저자의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에서 자존감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다.
자기 효능감은 '내가 유능하다고 느끼는 마음'이고,
자기 조절감은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한다는 느낌'.
자기 안전감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다.
그리고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묘사는 '느낌'이다.
How I feel about myself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느낌.
결국 요즘 추앙받는 자존감은
그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느낌은 시시 때때로 달라진다.
기분이 좋은 아침에는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은데?' 하며 발걸음이 가볍다가도
가는 길에 재수 없는 일이 하나라도 생기면 '역시나, 느낌이 안 좋군.'라고 뒤집혀버리기도 한다.
나는 오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기 불편할지도 모르는 말들을 해보려 한다.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사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느낀 이유는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내가 가진 것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염원한다.
'사회성을 갖고 싶어.'
'예쁜 몸, 예쁜 얼굴을 갖고 싶어.'
'좋은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갖고 싶어.'
'멋진 능력을 갖고 싶어.'
'좋은 가족을 갖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어.'
이는 단순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자존감이 낮으면 자기가 가진 것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기분을 느끼는 감정보다
가지지 못한 것 혹은 가졌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을 생각하며 탓하는 감정이 크다.
이는 지극히 나 중심적인 사고이다.
내가 다 가져야 한다는 사고인 것이다.
나는 사회성도 좋아야 하고, 얼굴도 몸매도 멋져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모든 것을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마음 깊이 난 구멍은 아무리 채워도 메꿔지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하나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블랙홀을 심장 근처에 가지고 있다.
행복과 기쁨의 감정은 찰나의 순간을 만끽하면 블랙홀로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다시 손을 뻗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은 이유가 이런 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성공을 했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성공을 했지 누군가를 짓밟으며 성공을(했을 수도 있겠다)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기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항상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가장 소중히 해야 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낮고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제는 자기 탓, 남 탓, 합리화다.
'나는 어렸을 때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했다.'
'친구들이 나를 왕따 시켰다.'
'내가 잘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배신한다.'
'내 뒤통수를 때렸다.'
'가정환경이 불행했다.'
'내 뜻대로 산 적이 단 한순간도 없다.'
가족 탓, 친구 탓, 모르는 사람 탓, 남 탓을 하다 세상 탓을 거쳐 결국 자기 탓까지 한다.
'나는 죽어도 싸요.'
'그들이 나를 버려도 괜찮아요.'
'죽이지 않았으니까 용서해줘도 될 것 같아요.'
'나는 당할만해요.'
이렇게 남 탓, 합리화를 거쳐 자기 탓까지 하는 사람은 내 인생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결국 인생의 키는 자기가 쥐고 있고, 자기가 한 선택인데 선택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 차마 내가 한 선택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인생에 끌려다니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이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나를 떠났다.'
'내가 믿고 아끼던 친구인데 나를 배신했다.'
'나는 모두에게 친절한데 돌아오는 게 없다.'
'나는 항상 주기만 하고 받는 게 없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베풂과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환심을 얻기 위해 잘해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결국
내가 이렇게 잘했으니까 날 좋아해 줘야 해.
라고 상대방에게 무언의 요구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삐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괜히 엄한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수동 공격적(Passive Aggressive)인 스킬을 사용하거나, 뒤에서 험담을 하거나, 울어버리는 등 감정을 쏟아부어서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 조종하기도 한다.
결국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건 '나에게 잘해달라고'다.
누군가를 믿는 것도 '내가 믿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내가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격체고 서로가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은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결국은 무척이나 이기적이다.
영화 'the Fundamentals of Caring(돌봄의 기본)'에서는
My needs are equal to the needs of the person to whom I am giving care.
나의 욕구는 내가 돌보는 사람의 욕구와 동등하다.
라는 모토가 등장한다.
죽어가는 시한부 환자를 돌볼 때에도 나를 먼저 돌보고 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재미있는 사람이 되려고,
누군가를 즐겁게 만들어주려고,
예쁨을 받으려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
등등의 자신만의 은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하던 그들이 번아웃이 되거나,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등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들은 종종 자신의 가장 근처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다.
이는 앞서 말했듯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어떻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가 있는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존감이 낮다며 사람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은 결국 자기 연민에 빠진 이기적인 존재다.
그리고
이 글은 사실 최근 몇 달 동안 나와 내 인생을 돌아보며 나에 대해 고백한 일기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세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뭐라고?!' 하며 열 받는 경우
2. '아니야. 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경우
3. '맞아. 난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야. 나는 살 가치가 없어.' 라며 다른 부정의 늪으로 빠져드는 경우
나는 저 세 가지의 감정을 모두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갔다.
자존감이 단순히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나는 자존감이 낮다.
그리고 나는 그래서 내가 그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자기 연민과 비난이 가득한 나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또 다른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소우주에서 본인 스스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그러한 소우주들이 모여 가족과 사회를 이루고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신비하고 위대한 일이다.
세계적인 그룹 'BTS'를 키워낸 방시혁 프로듀서는 '분노'가 자신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는 '분노'라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예술'이라는 사회적으로 용납이 가능한 창조적인 결과물로 승화시켰다.
나는 내게 가끔 뜬금없이 문득 찾아오는 자기 연민과 비난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 방법들 중 하나는 내가 앞서 이야기한 자존감 높이는 열두 가지 방법 등의 기술들도 있다.
하지만 사실 나로서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해서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
틈만 나면 부정적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것이 익숙하고, 그 익숙함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생각의 회로를 바꾸는 것은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정도다.
그래서 이번에 생각한 방법은, 가장 친한 친구를 대하듯이 나를 대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듯이 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를 챙겨주는 것과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게 챙겨주는 방식대로 나를 대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기적인 사람의 이기심을 채우기에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그 친구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은혜를 갚을 것을 알고 있다.
혹시 질질 끌고, 여전히 이기적으로 굴더라도 가끔 봐주면서 기다리면 된다.
언제 갚을지 모르는 남을 기다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러면 나와 가장 친해져야 할 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연습. 또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