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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Aug 08. 2024

나의 보이스 트레이너, 마르셀 프루스트

# 복식 호흡이 뭐길래  

낭독 봉사할 때 쉽지 않은 책을 꼽으라면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성우 못지않은 연기를 펼쳐야 하는 장편 소설, 사진 묘사를 생생하게 해야 하는 여행 서적은 지난번에 말씀드렸고 나머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입니다. 눈으로 읽으며 따라가기도 수월하지 않은데 말로 읽어야 하는 만연체는 고난도의 과제였습니다.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훌쩍 넘기기도 했어요. 


아무리 긴 문장이어도 의미 단위로 끊을 수 있는 구간이 있긴 한데 문제는 다시 녹음할 때 티가 난다는 거였어요. 한 호흡으로 가면서 잠시 쉬는 것과, 아예 녹음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건 목소리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분들이나 직원분들은 티 나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저의 귀에 들리는 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마들렌, 홍차보다 긴 호흡이 간절해


감미로운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악기를 부는 동시에 숨을 들이마신다는데 저도 그런 기술이 가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실루엣>을 연주할 때 후반부에서 한 음이 무한대로 길게 나올 때면 듣는 제가 숨이 찰 정도의 긴 호흡이 부러웠습니다. 한 호흡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으니 대신 끊는 구간을 가능한 한 줄이고자 했어요. 숨을 있는 대로 한껏 들이마시고, 읽을 때도 숨을 아껴 쓰고, 이번 숨에 조금이라도 더 읽으려고 마지막 남은 숨을 짜며 버텼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 덕분에 안정적인 스피치를 위한 엄청난 기초 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1) 숨을 있는 대로 한껏 들이마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쉼 없는 정주행을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흉통에만 숨을 채워서는 천안 지나면 멈추겠다 싶어 몸속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배가 불룩해지도록 숨을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하면 할수록 들숨의 용량이 늘어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하고 있는 게 복식 호흡이었어요. 


2) 읽을 때 숨을 아껴 쓰다

연비를 좋게 하면 같은 조건에서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읽어야 할 문장이 구만 리니 같은 양의 숨으로 다른 책 녹음할 때보다 최대한 길게 읽으려고 애썼어요. 

중요한 자리에서 긴장하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저도 모르게 쇄골 호흡을 하게 되는데, 연비가 좋아진 덕분에 적은 양의 숨으로도 중간에 끊김 없이 한 호흡으로 매끄럽게 말하는 게 가능해졌어요. 


3) 마지막 숨을 짜내며 평온한 소리를 내다

제 숨이 얼마나 남았든 오디오북에 녹음되는 목소리만 문제없으면 되기에 지친 기색을 티 내지 않고 끝까지 정상적인 소리를 내려고 했어요. 자동차는 기름이 부족하면 덜덜거리다가 멈추지만 제 발성은 멈추는 순간까지 고속 주행을 시도한 거죠. 왜 그랬을까요, 힘들게. 

발성 기관과 조음 기관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상 가동하도록 훈련을 했더니, 숨이 넉넉하고 여유 있는 상황에서는 목소리가 더 편안하게 나왔습니다. 발표할 때는 물론 평소에 대화할 때도 언제나 안정적인 톤을 갖게 되었어요. 맹연습하던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걷는 기분이 아마 이렇게 사뿐하지 않을까요.


말하는데 복식 호흡이 유리한 이유


안정감 있는 장거리 주행을 위해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호흡으로 숨을 넉넉하게 확보하면 말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법을 여유 있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발성과도 관련이 있어요. 숨이 얕으면 목에서 모기만 한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몸속 깊은 곳부터 넉넉한 숨이 힘차게 밖으로 나오면서 발성 기관과 협력하여 풍부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여러분도 프루스트 선생의 책을 한 권 녹음하고 나면 호흡 내공이 쌓일 텐데 그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니, 몇 가지 훈련으로 저와 비슷한 효과를 보실 수 있는 방법들을 다음 시간에 소개해 드릴게요. 간단하지만 비포 애프터의 변화가 크고 유용하니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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