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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변만화 Nov 30. 2024

#3 신의 꿈_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

숲 속의 은둔자 페이든




感喜
  감희!!!!
독자 여러분의 즐거움과 몰입을 위해
앞전 연재부터 순서대로 읽으실 것을 추천하여 봅니다. 감히.




1부 3장

한 발짝, 두 발짝


“와-아-!”


 아이의 눈앞에 울창한 전나무 숲이 보였다. 짙푸른 전나무 숲이 그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숲에 다다르자 반갑고 서슴없는 얼굴로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숲은 마치 아이를 알아본다는 듯 아이의 발길을 받아들였다. 기실, 아이가 숲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곳이 숲의 입구인지조차 알기 어려워 보였다. 숲은 그 생명력으로 아이를 사로잡았다.

온갖 생명들의 태동이 아이 안에 외로움을 섬멸시켰다.


“하~나~두~울~~”


 아이는 큰 소리로 제 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툼히 깔린 녹색의 이끼가 맘에 드는지, 걷다 말고 자꾸만 멈춰 서서 손으로, 한 발로 도톰한 이끼를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제각각 다른 모양의 솔방울, 잣방울과 돌들 역시 아이의 눈과 손을 바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 옷에 달린 작은 주머니들은 입을 삐쭉거리며 달랑거렸다. 숲에 걸어 들어갈수록 각양의 생명들이 내뿜는 향기와 이채로운 소리가 아이의 영혼을 씻기고 채웠다.


“안녕~꽃들아~!”


 다 구분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꽃들의 향기가 아이의 발걸음을 자꾸만 멈추게 했고, 꽃들 역시 그런 아이를 미세한 떨림으로 바라보았다.


“안녕~바위야~!”


 아이가 낯익은 바위들을 지나칠 때마다 제 키보다 큰 바위들에 손을 얹으며 토닥거렸다.

그 손길에 마치 바위에도 생명이 있는 듯 느껴졌다. 숲과의 조촐한 인사를 끝낸 아이는 이제 맑은 계곡줄기를 따라 옥색의 물웅덩이를 지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계곡에 담긴 물빛은 변하지 않았다.    


“칠십, 칠십...? 그다음에 뭐였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멈춰 섰지만 이내 씩씩하게 다시 걸었다. 숫자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럴 땐 아이의 눈과 발이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흔아홉~ 백~! 다 왔다~!!”


 아이의 발걸음이 멈춰 선 그곳에 페이든의 집이 있었다.




1부 3장

숲 속의 은둔자 페이든     


 페이든, 그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이방인이자 이 숲의 은둔자였다.

아이가 페이든의 집 앞에 도착하자, 나뭇가지를 얽혀 만든 키 작은 대문이 이미 손님을 기다리는 듯, 하얀 민들레 한 송이를 꽂고 열려있었다.


“안녕~하얀 민들레야~!”  


 아이는 마당에 들어서며 큰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집 울타리에 좋은 향기를 내는 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감싼 여러 종류의 덩굴들에서 핀 꽃들은 모두 다 아이가 좋아하는 향기를 지닌 꽃들이었고, 들장미를 제외하고는 가시가 있는 덩굴은 하나도 없었다.

덩굴들에 각양의 꽃과 향기가 피고 열매가 열리면 아이의 웃음소리와 기쁨도 배가 되어 열렸다.

 아이가 덩굴마다 핀 꽃에 손끝을 대보며 인사했다.


“안녕~! 꽃들아! 안녕~!”


 자줏빛 칡꽃이 선명한 향기를 내며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연보랏빛 으름꽃의 향기가 파란 하늘 아래 달랑달랑거렸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아~오늘도 내가 왔단다~! 잘 지냈니?!”


 꽃들도 아이의 인사가 고운지 바람에 살랑이며 인사했다.

꽃과 동물을 대하는 아이의 말투는 주로 페이든을 흉내 낸 말투였다. 그는 아이를 그런 조심스럽고 다정한 말투로 대했고, 덕분에 아이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말수도 말솜씨도 많이 늘었다.

그리고 조금 더 밝고 건강해졌다. 그는 아이의 변화가 늘 놀랍고 고마웠다.


 하지만 아이만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는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적응하지 못한 숲에서 아이만을 의지하고 기다리며 살아왔다. 칠일 간의 비가 그치고 팔일 째의 단 하루 맑은 날이 오면 아이는 어김없이 그를,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고, 그는 그런 아이를 위해 손수 먹을 것을 준비했다.


칠일 내내 허기지고 외로웠을 아이를 위해 단 하루 맑은 날의 소풍을 따뜻한 식사로 채워 주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먹을 것과 이야기와 마음과 미소를 나누는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그들이 나누고 채운 것은 서로의 영혼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가 친구를 만나러 오는 길은 힘들고 무섭고 외로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그 길을 주저한 적이 없었다. 어김없이 그리고 의심 없이 어딘가에 내가 아는 길이 있고, 그 길 끝에 틀림없이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상상만으로도 큰 용기를 내게 했다.


 둘은 오랜 세월 서로를 잊지 않고자 하는 노력 덕분에 비 내리는 시간의 차가움과 단 하루 맑은 날의 지독히도 찬란한 아름다움을 견디고 지킬 수 있었다.

때문에 아이에게 그는 이방인도 은둔자도 어른도 아닌 친구이자 소풍 그 자체였다. 그리고 페이든에게 역시 아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아저씨!”


“아이가 왔구나!”


 아이와 페이든이 몇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웃었다.

 그는 아이를 이른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일찍 온다 해도 점심 때가 되어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동이 트기 전부터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오는 날이 되면 그는 문 밖에만 나와 있어도 바람과 햇빛 속에서 그리고 숲의 오만 소리들 속에서도 아이가 오고 있다고 착각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일찍 전날 밤의 깊은 적막과 짙은 고요 속에서도 아이가 오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면 숲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기척이 생기와 온기를 띄었다.


기적이었다. 태생이 가난하고 초라한 영혼인 건지, 아님 지독한 병인건지, 그의 영혼은 그의 마음이나 생각, 의지나 노력 따위에 손발을 맞춰 주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저 세계에서나 이 세계에서나 언제나 아랑곳없이 요동치다 맥없이 가출해 버리고, 떠났다가 예고 없이 나타나는 짓을 반복하며 그를 늘 혼란스럽게 만들었었다.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그것은 정신병이라 하면 정신병이었고, 마음의 병이라 하면 마음의 병이었지만, 덕분에 그의 삶의 의지와 희망은 늘 무수한 허무와 무기력에 시험당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의 존재는 매 분, 매초를 잇게 하는 삶의 뿌리이자 기적이 되었다.


“아이야, 오느라 힘들었겠구나. 배가 많이 고프지?! 그런데 오는 동안 별일은 없었니?!”


 아이는 쏟아지는 그의 질문에 무엇을 먼저 대답해야 할지 몰라 까르르 웃음이 났다. 아이가 뒤늦은 대답을 우렁차게 했다.


“네!”


 그는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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