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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Sep 19. 2024

빛나는 단편- 아들의 적

작가 모옌


글을 쓴다는 건, 작가에게 어떤 일일까를 생각해 본다.

전쟁에 아들을 내 보낸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쓴다면, 

그것도, 이미 두 아들 중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들마저  끌려나간 어머니의 심정을 그려야 한다면 어떨까.


독자는 작가의 글을 몇 자 읽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설정에, 

다 읽은 거 같고, 다 알 거 같은 분위기가 될 것이고,

아무리 뛰어나고 지리는 문장력이라도 벌써 독자는 녹다운이 되었을 것이다.


요새 나는 꾹 참고 명작들이라고 불리는 글들을 읽고 있다.

왜 뛰어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글들은 이렇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왜 이리 외면하고 싶은 심정들을 억지로 쳐다보게 하는지.

깨닫고 생각하고 배울 것이 많지만, 실상은 참으로 기가 털리는 과정들이다.


중년이라는 나이가 현실이 나대며 휘둘러대는 칼부림에  베일대로 베인 나이가 되어서이다.

글은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시청할 때는 이제 그만 그런 현실을 다 잊고 싶다.

로맨스도 리얼리티가 가장 떨어지는 로맨스 판타지를 읽고,

역사물도 빼꼼한 가까운 역사 말고, 몇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을 좋아한다.


사랑이 오고 가는 길을 지나도 보고, 스쳐도 보고, 지켜도 보았다. 

지나치게 잘 살거나, 극심하게 가난한 사람들과도 있어 보고, 겪어도 보고, 보내도 보았다.

그러한 앎이 늘어날수록, 가상의 틀 위에 지어진 이야기들에 몰입이 방해된다.


참혹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에 처한 사람에 대한  글을 작가 모옌이 써 내려간다.

따신 밥을 먹고, 뜨신 방에 늘어져 읽으면서

내내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싶고,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외면하고 싶은 그녀의 심정이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도 모르게 모호하고 아득한 그 경계를 오가는 모옌이 

불운한 어머니를, 그리고, 독자를 끌고 종횡무진 다닌다.


작가 모옌이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글로 유명하다던데, 과연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스타일의 글이 이렇게 꿈인 듯 생시인듯한 불행 앞에

상상을 초월한 고통 앞에서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 않나.

진짜 큰일을 겪으면, 내 것이 아닌 거 같은, 내 것이 아니여만 할 거 같은 고난 앞에 서면,

우리는 현실과 꿈, 상상과 그 이상의 경계에 

허덕허덕 내가 걸쳐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역사적으로 알려진 큰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에 출발과 이유에 어떠한 기여도 없고, 상관도 없었던 개인이고, 가족인데,

어머니의 아들이 차출되어 간다.

그렇게 끌려간 큰아들은 죽었고, 열사가 되었다는데, 

어머니는 큰 아들의 시신을 본 적도 없고, 그저 새로 쌓은 무덤 앞으로 이끌어졌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나머지 철딱서니 없이 해살 하게 매끈한 둘째 아들 샤오린이 또 끌려갔다.

샤오린은 곧 이 근처에서 있을 전투에 나팔 병으로 나선다고 한다.

샤오린은 그가 고향 근처에 온 것을 안 상사의 배려로 엄마를 방문할 수 있는 반나절 휴가를  받았다. 

샤오린은 엄마에게 얼굴도 보여주고, 마음에 둔 처자를 만나고 돌아갔다.

그 사이 아들은 키가 크고, 수염이 거뭇해지고, 살짝 철이 들기도 해서,

엄마가 마련해 준 전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엄마 먹으라며 돌아간다.

올 때에는 엄마에게 따뜻한 모자를 선물하겠다며 약속을 하고 말이다.


밤새도록 어머니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어머니는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들리는 나팔소리에 안도하며 밤을 지새운다.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지는 나팔소리에 어머니는 초조하여 길을 헤매며 

둘째 아들 샤오린을 찾아 나선다.

큰 아들을 잃었을 때에는 그의 주검마저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되풀이할 수 없는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닌 듯, 아들의 시신을 찾아 

전쟁통에 온갖 시체더미 속을, 부상당한 병사들 속에서 샤오린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와중에 수송 중인 부상병을 샤오린으로 착각하기도 몇 번이고,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저지 당하기도 숱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헤매다가

촌장과 일꾼들에 의해 들려서 집에 침상에 옮겨진다.


얼핏 잠에 들었을 때, 그녀를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 설치고 다닐 때 만났던 간호장교가 널판에 시신을 든 인부 두 명을 뒤로하고 서있다.

샤오린 댁이 맞냐고 묻는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참혹하기도 잠시, 가만히 보니, 아들의 시신이 아니다.

더구나 아들과 좋아하던 샤오타오마저 샤오린의 시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 사이 민병 대장이 시신이 열사 샤오린의 것이 아니라, 적군의 것이라고 바뀌었다고 난리다.

막상 시신을 앞에 두고 신분을 확인을 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어머니는

이번 싸움이 나기 전에 보았던 아들의 얼굴이 가물거리며 생각나지 않고 아득하다. 

그러나, 아들 또래의 나이, 아들보다 고생한 고단한 삶이 묻어 있는 손마디,

서캐가 그득한 옷과 시신을 보니, 같은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연민을 느낀다.

시체가 자신을 거둬 달라고, 아니면, 아무렇게나 던져져서 들개 밥이 될 거 같다고 말하는 거 같다.

그녀는 그 시체를 자기 아들처럼 수습하기로 결심한다

씻기고 널판을 가져오고...샤오타오는 그런 어머니의 처신에 불만이 많은 듯,

아들의 적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시신을 향해 도끼를 들고 달려 들려고 한다.

둘이서 그렇게 대치하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찾는다.


그 소리에 침상에서 굴러떨어지듯이 일어난 어머니는 대문 쪽으로 몸을 굴려 나간다.

어제 보았던 그 간호장교가 어제 보았던 그 똑같은 복장으로 서 있다.

뒤에는 어제 보았던 그 널 위에 시신을 들고 있는 인부가 둘이 있다.

여기가 샤오린 열사의 집이 맞냐고 묻는다. 


처음에 읽을 때는 무슨 수수께끼 미로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 쓰인 단편이 분명하건만, 홀린듯한 구성이라 작가를 온라인에서 찾아보았다. 

모옌이 이렇게 환각적인 형태의 소설이 주특기란다.

어쩐지.. 붉은 수수밭도, 온통 붉은색으로만 기억될 뿐.

생각나는 줄거리의 줄기가 없더니만.


이런 계열의 선수 중에 선수인 작가답게

독자를 꿈인 듯, 현실인 듯, 환각인 듯, 헷갈리는 듯 그러나 명백하게 비극에 하나씩 참여시키며, 

울렸다가, 살짝 찡하게 했다가, 긴장시켰다가 하는 여러 암시를 흘리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꿈보다 더 슬픈 현실의 노크와 부름에 어머니의 눈이 떠졌으므로,

침상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허둥지둥 사람 부르는 쪽으로 달려가는 묘사는 몇 줄 안되지만, 

그 짧음으로 어머니가 현실에서 막 닥뜨린 비극의 많은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영웅도 아니고, 비범한 캐릭터도 아닌 평범한 어머니가

비극 앞에 이리저리 치이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가슴 조인다.

이런  어머니의 행동들이 묘사될 때에  독자가 흘린 눈물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것이 꿈인 듯 아닌 듯 꿈이었다는 사실.

그렇다고 깨어난 현실은 그 꿈속의 비극보다 나은가 하면, 그것도 절대 아니라는 거.

비극 속에 있는데, 더 큰 비극은 그 비극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이 있는 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누군지도 모르겠는 적을 두고,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고 죽어가는 청년들과 그 어머니에게 

현실과 환각과 악몽의 차이는 구별해 무엇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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