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운수 좋은 날
그래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내 일천한 지식이 진심 부끄럽다.
나는 왜 이리도 훌륭한 작가들을 몰랐던가.
내 대학 전공은 왜 그리 연대기와 캔터베리 이야기와 주홍 글씨로 점철되었던가.
돌아보니 짜증이 나는 요즘이다.
개츠비를 읽고 눈먼 사랑의 맹목성이 이끌 수 있는 파멸에 대해 생각하고,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고 신앙과 구원에 대한 허위와 위선을 생각하고,
셜리 잭슨을 읽고 맹목적인 사회의 룰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생각하며,
대학시절을 보냈으면, 이미 살아버린 내 삶이 덜 고민스러웠으려나 싶다.
요즈음 읽은 셜리 잭슨여사의 제비 뽑기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The Lottery는 제비 뽑기보다는 복권, 대박등으로 번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모두 여덟 페이지이고, 줄거리도 간단명료하다.
아이들이 돌을 가지고 조그마한 마을의 한가운데로 모이고,
곧이어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여자들마저 모이면, 해마다 그들이 해 왔던 대로 제비 뽑기가 실행된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고,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 사이 의식이 희미해지며 사라져서, 노래도 스피치도 없어지고,
낡아져서 매해 서머스 씨가 바꾸자고 외치는 검은 상자와
그 안에 종이를 넣어 뽑는 제비 뽑기만 남았다.
제비 뽑기의 진행자는 늘 이 동네에서 열리는 지역사회 행사를 맡아하는 석탄회사 사장 서머스이고,
우체국장 그레이브스가 거든다.
워너라는 노인은 77년 동안 제비를 뽑았고, 해마다 옥수수의 풍년을 기원해왔다고 한다.
애덤스는 워너 노인에게 이웃 마을에서는 더 이상 제비 뽑기를 하지 않는다며,
슬며시 이 이벤트에 반감을 표하지만,
워너 노인의 옥수수의 풍년은 어쩔 거냐는 일갈에 입을 다문다.
중간에 빠진 사람이 없는지, 제비 뽑기 전에 점검에 들어가는데,
때마침 늦게 도착한 허친슨 부인이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서로서로 스몰 톡을 해가며, 이제 제비를 뽑는다.
마침내 허친슨 씨가 검은 점이 그려진 종이를 뽑았고,
규칙대로 그의 가족들이 전부 나와서 다시 제비 뽑기에 나선다.
허친슨 씨, 허친슨 부인, 아이들 순서대로 뽑는데, 허친슨 부인이 검은 점을 뽑았다.
이제 일제히 사람들은 돌을 들었다.
허친슨 부인의 아이에게도 돌을 쥐여 준다.
허친슨 부인이 외친다
"It isn't fair."
그녀의 외침은 묻혔다.
모두들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야수와 같은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은 1948년에 The New Yorker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느지막한 주말 아침, 커피 한 잔을 들고,
교양과 문화와 예술의 향을 맡으려고 잡지를 들었던
당대의 인텔리들 입안의 커피를 뿜게 만들고 말았음이 틀림없다.
평범한 문장, 매끄러운 평화로움, 잔잔한 진행, 거기다가 the lottery라는 제목 등
어느 거 하나도 이런 식의 엔딩을 예측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대단한 작가이며, 대단한 통찰이다.
발표된 지 낼모레가 백 년인데도
현대 사회에 여전히 적용되며,
그때와 같은 의문을 던지게 한다.
계속하던 일이라는 이름으로 unfair 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익숙함은 노예도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게 만들고,
나만 아니면 되는 희생양 하나는
집단에게 얼마나 편안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단편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고,
토론의 주제로도 활발하다.
그럴만 하다.
셜리 잭슨이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가 던진 돌에 맞았다고 한다.
교수였던 남편을 따라서 조용한 촌 동네에서 살게 되었는데,
외지인에게 조그만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선량하기만 하겠는가.
그곳이 한국이든 어디든 말이다.
아무튼 그런 경험들을 셜리 잭슨은 오랫동안 사유했고,
그것들을 살려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같은 돌도 셜리 잭슨이 맞으면 불후의 명작이 되는구나.
내가 맞았으면 그느므 자식은 골로...
그러하다.
#그럴만하다
#단편소설
#제비뽑기
#셜리잭슨
#무서운작품많이쓰심
#그것도
#그럴만할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