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시리즈를 열며.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여러 마음들이 느껴진 거야.
누군가 갓 스물이 된 내게 그랬었다. "너는 종잡을 수가 없어." 내게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내가 불편하다고 온 얼굴과 몸짓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무 살의 어리고 예민했던(지금도 그렇다) 나는 적잖이 상처받았다. 나는 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지 계속 곱씹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허무하리만치 슬픔은 휘발되었지만 나는 두려웠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또 내게 "언니는 종잡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그 애의 말에는 명랑한 느낌표가 달려 있었다. 마구잡이로 흐르는 내 아무 말이 재밌다고 했다. 성수의 한 카페에서 등에 햇살을 업고 들은 그 말이 내 머리에 종을 땡 쳤다. 나의 지난 슬픔은 실체가 없었다.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애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 깨달음이 이십 대 초반에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그 후로도 종종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잔뜩 몸이 달았었다. 그럼에도 그게 불가능한 영역임을 분명히 알고는 있었다. 내 헛발질을 주기적으로 돌아보면서 에그, 또 이런다, 하고 마음의 캐시를 정리했다. 사는 게 눈곱만큼은 쉬워졌다. 눈곱보다 더 큼직하게 쉬워졌다면 좋았을 테지만, 나는 너무 어리석다.
그 애는 자기가 내 생활을 그렇게 만들어준 줄 여즉 모르고선 지금도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그때의 일은 기억도 하지 못할 테고, 내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본인인 줄도 모를 것이다. 이 시리즈를 출판하게 되면 책을 그 애 손에 쥐어주면서 네 덕이라고 꼭 말해주어야지.
그건 결코 당연하지 않았지.
일상의 호의들은 작았기 때문에 더 컸다. 아슬아슬하게 강의실에 뛰어가는 나를 위해 친구가 수업 전에 뽑아놓던 자판기 음료수, 유독 곤혹스러운 손님이 많아 아르바이트가 힘든 날 직원들이 쥐어주던 간식, 피로와 침울함 따위로 찡그린 나에게 선후배가 건네 오던 "술 사줄까?" 같은 말... 상냥하거나 장난스런 미소. 받은 것들이 셀 수 없이 산재했다. 그게 전부 호의인 줄 몰랐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당연하지 않은 소중하고 작은 호의들이 수년동안 모여서 단단하게 내 코어를 이루었다. 인색했던 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내준 호의에 점차 무방비해졌다. 나를 꽁꽁 싸매다 못해 옥죄던 갑옷을 한 겹 벗었다. 표현하는 법과 꾸며내지 않는 법을 천천히 배웠다. 아직도 사람들을 통해 천천히 배우고 있다.
물론 그들도 딱히 고맙다 소리를 들으려던 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는 그냥, 친구였다. 해가 갈수록 더욱 친한 친구가 된 사람들도 있고 이제는 친구가 아니게 된 사람들도 있다. 어찌 됐든, A to Z라는 이 작지 않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내 곁에 머물렀던 한 명 한 명 덕분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연재하고자 한다. 추억을 더듬어볼수록 내가 충분히 좋은 친구였는지 의문이 남는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애쓰겠다.
지난날 함께였던 우리가 주고받았던 마음에 애정 어린 찬사를 보내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