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너무 긴 낮과 너무 짧은 밤
어릴 때 A는 키가 컸다. 마주치는 아주머니들마다 키가 크다고 한 마디씩 보탰다. 낯가림이 심했던 A는 그때마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까딱 인사를 했다. 차라리 키가 작았으면, 바란 적도 있다. A는 정이 많았다. 전학 가는 친구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글썽거리곤 했다. 키우던 오리, 메추라기가 떠났을 때 가슴에 멍울진 감정이 뭔지 가늠해보며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달걀 비린내와 양치질을 싫어했다. 소심했다.
A는 시간만 나면 놀이터 정글짐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매해 어울려 노는 친구, 집에 초대해 주는 친구가 한둘은 있었다. 출장을 다녀오면 아빠는 장난감을 하나씩 선물로 안겼고, 구두 닦는 척을 하면 500원을 쥐어줬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실제로 닦지는 않고 시늉만 한 적도 많다. 여하튼 손 쓰는 걸 좋아해서 피아노 치는 것과 초등학교의 삐걱이는 마룻바닥에 초칠하는 것도 좋아했다. 다 좋았던 날 같은데 언제부터 A는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A의 인생에 엄청나게 심각한 고난이란 없다. 겉보기에는 그랬다. 자잘하게 열거하자면 인간관계에서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며 가슴앓이한 것, 엄마를 모셔오지 않는다고(실은 촌지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내 숙제에만 가혹하게 굴던 선생님 때문에 학교가 가기 싫었던 것, 반 친구가 나만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아 속상했던 것,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마주한 바바리맨의 고추 공격에 그 길을 걷기 무서워했던 것,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종종 부끄러운 언행을 저질렀던 것 등등 일일이 꼽을 수도 없겠으나... 세상은 그런 걸 심각한 고난으로 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 A는 매번 깊게 상처 입었다는 사실.
상처 입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처받는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우스운 인간 같았다. A는 많은 밤에 내일 해가 뜨지 않기를 바랐다. A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모르는 체한다거나 선생님이 괴롭힌다는 사실 등을 부모에게 말할 용기도 없었다. 부모님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 노력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비참한 자기 고백을 심각한 얼굴의 부모 앞에 늘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 대신 상황을 외면하면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밤은 너무 짧았고 한낮은 너무 길었다.
넌 정말 별 볼 일 없지만.
A는 대학에서 아주 유의미한 관계들을 만났다. A의 20대가 10대보다 덜 불안하고 덜 울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친구들 덕분에 차츰 알아갔다. 스스로를 사무치게 미워하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또 친구들을 의심하지 않는 법을. A의 친구들. 친구들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자면 지면이 모자라서 심지어는 시리즈로 적고 있는데, 한 편씩 완성할 때마다 A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A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껏 지속되었느냐 중단되었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A는 10대까지 늘 불안하게 눈치를 살폈다. 누구의 눈치를 살피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누구하고든 어긋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다. 그런 점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건 아낌없이 수용해 줬던 친구들의 노고가 크다. A는 이제 불안하게 눈을 굴려대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농담이나 한다. 때로는 침묵을 즐기며 앉아 있는다. A의 친구들은 A의 실수를 용서하고 침묵을 함께 즐긴다.
A는 자기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생각한다. A는 어쩌면 영영 눈알만 굴려대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속감에서 기인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오래도록 해선 안 될 말을 일삼으며 살았을 것이다. 무심코 저지른 언행의 부끄러움에 절어서 이불이 다 해지도록 발길질을 했을 것이다. 가족 아닌 사이에도 대가 없이 용인하는 마음이 세상에 산재한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A는 친구들의 마음이 기쁜 한편 힘들었다. 언제쯤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실체를 깨닫고 그들이 사랑을 거두어갈까 생각했다. 부끄럽고 불안해서 며칠이나 눈물로 범벅이 됐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불안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친구들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사소한 연락을 하고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달이 지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몇 밤이나 반복해야 불안한 인간은 불온한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A는 수년이 걸렸다. 연락과 만남이 해마다 줄지만 A의 친구들은 매번 환한 얼굴로 A를 만난다. A는 불안과 불신을 거둬들였다. 스스로 실망스러운 것들이 A의 친구들에게는 사랑의 이유일지도.
A는 정말 별 볼 일 없지만 A가 스스로 증오하는 점들을 별로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가졌다. 친밀한 애정을 가르쳐준 친구들을 사랑스러이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A는 자주 생각한다. 결혼할 때 축의를 두둑하게 해야지, 생각하지만 친구들이 줄줄이 비혼을 선언한 탓에 축의금 계획은 어그러졌다. 생각해 보니 어떤 큰 이벤트가 있을 때 몰빵하는 건 너무 쉬운 방법이다. 사건이 없어도 진득하니 관계를 붙들고 어느 날 생각날 때 연락하는 쪽이 훨씬 어렵고, 그쪽이 내 친구들이 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다만 지금 떠올리는 얼굴들에겐 진득이 붙어 있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사랑은 어려움을 어렵지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