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신도시로 이사온지 열흘이 지났다.
작년 이맘때 라오스로 열흘 간
해외여행을 갔는데 1년이 지나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서 살고 있다.
새롭게 경험한다는 것은
설렘도 있지만 주저함, 두려움도 동반한다.
가족이 다 함께 첫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 있고 그 자체가 배움이 된다.
라오스 여행도, 아파트 생활도
아이들에게 처음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말은,
"아빠도 처음이야."
홈스쿨링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고 예상하던 집은
잔디가 깔린 전원주택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주택 관련한 전문가
선배들이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주택생활은 비추했다.
결국 손이 가장 덜 가고 생활에 편리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 생활은 처음이지만
층간 소음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을 접했기에
위층에 첫 이웃을 맞이하는
아래층 이웃에게 인사하러 갔다.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시간이 안 맞아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결국 아내와 두 딸들은 간식과 내 첫 책을
아래층 입구에 쪽지와 함께 두고 왔다.
입주민 카페를 통해 아내에게 채팅이 왔다.
잘 받았다고, 좋은 이웃이 위층에 와서
고맙다고. SNS에 어찌 나쁜 점만 있겠는가.
바쁜 삶 가운데 아직 얼굴을 못 봤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격려 한 마디에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필요하리라.
어제 이 곳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주일,
서울에 사는 성도들과 줌으로
안부를 나누고 우리 가족은
공원을 산책했다. 추울까 봐
옷을 껴입고 나오라는 내게
아내와 딸들은 연신 눈총을 주었다.
내 목에 두른 아내의 머플러도 민망했다.
1월의 마지막 날,
이제 봄도 슬슬 출근 준비를 하러
따뜻한 바람으로 몸풀기를 하는 듯싶었다.
큰딸과 나는 아파트 상가의
돈가스집에 저녁거리를 포장하러 갔다.
왕돈 하나, 치돈 하나, 토마토 파스타 하나.
네 식구가 먹을 저녁 재료가 담긴
봉투를 들고 오면서
나는 아파트 근처의 학교를 보았다.
신축 아파트 단지 안에 아이들이
입학할 초등학교 건축이 휴일인데도
트로트 음악에 맞춰 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학교를 보며,
큰딸에게 물었다.
"혹시 학교 가고 싶니?
가고 싶으면 가도 돼."
홈스쿨링을 하며 또래 친구들과
교제를 필요로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묻기를 잘했다 싶었다. 딸은 대답했다.
"같은 나이 때 친구를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학교에 2년이나 다녀서..."
유치원에서 단체생활은 했지만
2년 동안의 공백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어려울 거 같다며
주저하는 딸을 격려했다.
"이 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처음일 거야.
선생님도, 학생도. 네가 처음이듯이.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사실 알고 보면 어른들도 처음은 다 무서워하거든."
처음. 그 단어가 주는 설렘과 두렴.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으면 인생은 알지 못하는 법.
나는 홈스쿨링을 하지만 딸이 원한다면
그까짓 학교 보내는 것이 대수겠는가.
안 맞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이고.
누구나 다 당연히 가는 것으로 아는
학교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체가
자녀와 부모에겐 배움의 기회다.
최근에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된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첫 장은
이렇게 쓰여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실망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시도한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모험을 해야 한다.
일생일대의 가장 큰 모험은
바로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사, 학교. 딸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살며, 사랑하며 배우는데 좋은 재료가 될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것.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
홈스쿨 또는 공교육을 선택하는 것.
고민거리가 배움의 장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배운다.
집에 돌아와서 함께 먹는
돈가스가 참 맛있다.
이 돈가스 집 역시 우리가
처음 경험한 것이었으니
오늘 하루 잘 배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