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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경 Sep 21. 2021

공연홍보기획자입니다만

@ 2006년 아동극 페스티벌 '고양이가 말했어'(달과아이극단)_공연&홍보기획


초등학교 때는 꿈이 소아과의사였고, 중학교 때는 작가였고, 고등학교 때는 기자였고, 대학교 때는 아나운서였다. 사실 그것 말고도 굉장히 꿈이 많았는데 심지어 어떤 때는 꽃집이나 서점, 빵집,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고 싶기도 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다방면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건 때로는 좋기도 하지만 특출 나게 무언가 한 가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그리고 관심사가 계속 바뀐다는 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모든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나도 그랬다. 직업을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많은 방황 후에야 지금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횟수로만 치면 15년차, 일한 기간만 따지면 13년째 공연홍보기획자로 일을 하고 있다. 방황하던 그때 내가 가장 중점을 두고 생각했던 건 이거였다.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의 중간 지점을 찾는 것, 나는 문화예술을 좋아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공연을 좋아했다. 대학교 때는 스쿨밴드 활동을 하며 기획도 하고 공연을 해 본 경험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보러 가면 늘 백스테이지가 궁금했다. 그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떤 사람들이 공연을 만들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고,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것 역시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연기획자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또 공연기획자로서 일을 시작하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홍보기획자로 일을 시작했고, 공연만 하는 곳이 아닌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사업을 하는 공공문화기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공연과 문화사업을 기획할 기회들이 주어지긴 했지만 주 업무는 홍보기획이었다. 공연/문화예술 홍보기획자로 일한 셈이다. 당시에는 대중음악 콘서트를 좋아해서 서울로 백스테이지 아르바이트를 경험삼아 하러 다니기도 했다. 언젠가 콘서트 기획자로 일할 기회가 생기면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일을 시작한 기관은 전통예술 콘텐츠 사업을 하는 곳이었고, 콘서트보다는 낯설게 느껴졌던 전통예술에 더 관심을 쏟으며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전통예술과 관련된 홍보기획 일을 했다.


@ 2006년 아동극 페스티벌 '깨비깨비 도깨비'(남원국립민속국악원)_공연&홍보기획


기획 그리고 홍보기획, 시작은 모든 게 새로웠고 그야말로 나는 사회 새내기였다. 그곳에서 5년을 일했는데 정말 모든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느낄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경험했다. 사실 그때 쌓아놓은 실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연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홍보는 전문분야로서 별도로 취급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홍보업무를 체계화시키는데 힘을 쏟기도 했다. 공연/문화예술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기업이나 영화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찾고 실무에 대입시켜보며 일을 진행시켜 나가기도 했다. 지금은 공연/문화예술 홍보나 마케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예전보다는 중요시하는 분위기지만 내가 초반에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를 기반삼아 공연예술축제, 전통예술축제, 공연제작단체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에서 홍보기획자로 일을 해왔다.


@ 2006년 아동극 페스티벌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세계)_공연&홍보기획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연홍보기획자다.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으면 뭔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런데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도 공연홍보기획자라는 타이틀이 나에겐 참 어색했다. 대부분 공공기관 조직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는 직함으로 불렸고, 굳이 그러한 타이틀을 쓸 필요가 없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공연홍보기획자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을 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며 열정적으로 10년 이상 일을 해왔는데 왜 난 늘 부족한 것 같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건 내가 공연홍보기획자라고 나를 소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을 하는데 있어 나는 나만의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호기심이나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연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감성적인 성향을 반영해 다른 이들보다 감성적 홍보를 더 잘 할 수도 있다. 공연이나 문화예술 홍보는 콘텐츠의 특성상 일반 홍보와는 다른 면들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나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적재적소에 경험치와 능력들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홍보뿐만 아니라 마케팅에 대한 영역도 넓혀왔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일들도 잘 해낼 수가 있다. 이런 장점들을 생각하다보니 내가 공연홍보기획자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은 여전히 낯선 부분이 있지만 이제는 나를 소개할 때 ‘저는 공연홍보기획자입니다.’ 라고 말을 한다. 그건 내가 가둬놓은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일하며 그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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