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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선생님 May 20. 2023

치료사 엄마의 상담 이야기.

용기 내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2022년은 겉으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바쁜 한 해였다. 연초에 의도했던 바쁨과 분주함은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도전을 조금씩 하다 보니,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동시에 교재교구 출간 작업까지. 고된 작업이었지만 나에겐 원고를 쓰는 시간이 육아에 대한 도피처였고, 무엇보다 여전히 어려운 결혼생활에 대한 피난처였다. 신랑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원한 아침, 육퇴 이후 글을 쓰는 시간은 마치 울창한 숲에 혼자 온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글쓰기를 애정하고 글감이 넘쳐난 것은 아니었는데, 늘 안전기지를 찾는 나에게 원고 쓰는 시간은 불안정함을 달랠 수 있는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문제는 언젠가 곪아서 터진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어왔는데 그게 나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신앙생활로, 건전한 관계 안에서, 제2의 직업 안에서, 나름 잘 해결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제는 더 빨리 찾아왔다. 책이 출간된 지 2-3개월이 지났을 무렵,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계속 나를 휩싸는 것 같았다. '다른 작가분들도 다 이 과정을 겪었을 거야. 나뿐만이 아니야. 괜찮을 거야.' 이렇게 합리화를 시키며 꾸역꾸역 감정을 삼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체할 것만 같은 느낌의 연속이었다.


가장 불안한 것은 아이(들)와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내 아이에게, 치료실에 있는 아이에게 쏟아질까 봐 겁이 났다. 치료실 안에서는 내 몸의 감각이 감정을 절제하는 걸 체득한 것 같았는데 가정에서는 조금씩 필터가 망가지고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쏟아내는 빈도가 잦아지고 신랑과의 크고 작은 다툼이 이어졌다. 내 꿈을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이래서 작가분들이 여러 권의 책을 쓰나? 속상하고 슬펐다. 때로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신랑에게 서운했고(신랑은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엄마로서의 삶을 한 3일 정도만 탈출한다면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아이는 그렇게 큰 문제는 없었다. 건강했고 밝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그냥 그 시기에 나타나는 자기 주도성과 주장이 뚜렷하고 도덕성을 배워가고 있는 시기였다. 바깥에서 타인의 감정받이가 되어준 나는 내 아이의 감정을 세밀하게 읽어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대외적인 일도 점점 늘어났다. 그림책 강의가 겨울은 살짝 비수기지만, 책 홍보 작업에 여념이 없었고, 일은 일대로 마음이 분주했다.


이래서는 안 돼!


이 생각을 깊이 하던 찰나에 상담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이단인가? 제대로 된 곳에서 수련을 받고 계시는 분일까? 비밀보장이 될까?' 의심 가득한 마음으로 신청서를 냈는데 감사하게도 시간이 닿았고, 지금 6회기 이상 상담을 이어오고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깨닫게 된 부분이 많은데, 무엇보다 나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배워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러한 멘트를 쓰면 부부관계가 좋지 않냐는 댓글이 있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일에 대한 열정을 더 쏟았던 이유, 남편이 버겁게 느껴진 이유, 아이가 내가 정한 틀을 벗어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이건 아주 가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에 오히려 깊이 공감해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매 회기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돌아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정을 세워가는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정인데, 돌이켜보면 그 어떤 작업보다 더 귀한 일이었다.


엄마였기에 책육아에 힘이 실렸고, 엄마가 되었기에 부모상담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육아 경험은 그 어떤 언어발달 전공서적과 육아서보다 실제적인 경험과 지식을 더해주었다. 부부관계 또한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의견을 조율하고 매 순간 감정을 조절하는 과정은 훈련의 연속이지만 그 시간을 통하여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연애하고 결혼하더니 인간미가 생겼다고.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 20대는 타인과의 관계를 늘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반면에 자기보호가 강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투명한 벽을 세우고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인서울권 대학을 가면 인생이 잘 풀릴 줄 알았고, 또래 관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아이가 20대 성인이 되어서 처음 경험한 대학교 동아리, 교회 공동체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터전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세상보다는 안전한 담장이었다.


문제라면 이러한 안전한 담장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틀을 깨는 작업이 늘 수반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치료사 일을 하는 특성상 타인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그 통제가 하루에 몇 번은 있었고, 남편은 그 시간을 힘들어했다. 나 또한 남편의 단점을 밖에서 보는 교회 오빠나 아동의 부모님에게 만큼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지 못했다.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그럴 때면 글을 썼고, 만족감을 느끼며 잠들곤 했다.



치료사라면 누구나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가정이 있든 없든, 내담자를 만나고, 부모상담을 하는 그 에너지가 언젠가는 소진되고, 닳아서 상처가 날 수도 있다. 요즘 핫이슈인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원동력은 각자가 다르지만 먼저 내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각박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상, 어찌 마음이 1년 365이 평안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상담은 적어도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나의 가족과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담을 받는다는게 더 적합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상담을 받기 어렵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나 홀로 쉼을 갖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sns도, 카톡도,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나 홀로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거나 하루를 보내는 시간. 내향성과 외향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시간이 없으면 하는 말에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점점 사라지게 된다. 타인의 감정을 생각해볼 시간이 없으니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이 시간이 참 귀하다. 진심과 공감, 위로. 각박해져가는, 챗 gpt 강의가 날개를 돋고 있는 이 시대에, 불특정 다수는 원하고 있다. 진심으로 나의 마음을 누군가가 공감해주고 위로받고, 지지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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