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작년 10월, '그림책 전문가 과정' 수업을 들을 때였다. 아이들의 마음을 눈물이 날 정도로 잘 표현한 책. 특히,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미취학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을 때에 반응이 좋았던 책이었다.
<혼나지 않게 해주세요, 구스노키 시게노리, 베틀북>
#2. 초등학교 입학 전 6개월은.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부모님들께 입학 직전 해 가을은 이전의 가을과는 다른 느낌이다. '학부모'가 된다는 부담감과 함께 '혹시나 내 아이가 학교에서 뒤처지면 어떻게 하지?', '한글을 아직 다 떼지 못했는데 어쩌지?' 여러 가지 고민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다. (아직 나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지는 않았지만) 10년 동안 치료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의 현행 수준을 가장 잘 파악해야 하는 시기가 입학을 앞둔 6개월 전 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글을 빠르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아이들에게 '받아쓰기' 과제는 넘기 어려운 산이다. 내가 가진 실력을 처음 평가받는 순간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언어치료실을 다니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더 민감할지도 모르겠다. 또,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더 어린 시절부터 '쟤는 아직 말을 못 하네, '이제 말을 좀 하네?' 등의 타인의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다. 누군가 날 평가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작년 가을도 그런 시기였다. 3월부터 이끌어왔던 두 아이들 모두 각자의 유치원에서 본 받아쓰기 시험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커진 상태였다. 나는 심리치료사는 아니기에, 우선 아이들의 발음과 어휘력을 증진시키는 목표는 그대로 끌고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치료사도 아이가 익숙해지면 꼭 내 조카, 내 자식 같이 품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학교에 갔을 때 교실 안에서 이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물론, 당시에는 이렇게 전염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등교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림책 모임을 마치자마자 서점으로 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빨리 읽어주고 싶었다.
나는 언어치료사인데 과연 이 책이 언어와 목표가 맞닿아 있을까_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두 아이들 모두 첫 의뢰 사유는 '발음'이었다. 발음이 부정확해서 치료실에 온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7살 정도 되면, 이제는 어른들이 아니라 '또래'가 나의 발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다.
발음은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는데. 역시나 남은 과제는 '한글'이었다. 한글 관련 책을 찾아보았지만 연구하시는 분들마다, 그리고 교육 업체마다 한글 공부의 권장 시기가 각각 달랐다. 한 친구는 /ㅅ/가 부정확해서 온 경우였는데, 다행히 /ㅅ/ 발음도 개선되면서 /ㅅ/ 자음도 익혀갈 수 있었다. 또 한 친구는 두 명의 동생의 언니, 누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형제가 많은 경우에는 자신이 대화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말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 속도가 빨라지면 어른도 그렇듯 아이들의 발음은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입학 전에 '너는 잘하고 있어'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책 속의 주인공도 이렇게 행동의 오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주인공이 나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주인공은 동생을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일을 갔을 때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노력했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글씨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소원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다고. 각 시간마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3. 우리가 만들어 본 '소원 카드'
책을 읽고 소원을 적어 보았다. 아이 스스로 쓴 단어도 있고 내가 쓴 단어를 보고 쓴 단어도 있었다. 치료실 안에 나무가 있었다면, 아이들의 소원을 하나씩 적어서 걸어두고 싶었다.
#4. 올바른 피드백을 주고 싶다면.
치료실 안에서나 가정에서나, 아이들에게 주는 피드백은 '잘했어'가 아닌, 좀 더 섬세한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잘했다'는 나중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오면 '못했다'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전에는 ㅅ와 ㅏ가 합쳐질 때 /스~아, 사/가 된다는 걸 잘 몰랐는데 지금은 이제 시옷이 /스~/소리가 난다는 걸 알고 있구나!" "우와, 전에는 '사자'를 '타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사자' 정확히 들리는 것 같아."
앞서 기록했지만, 정확한 발음 산출을 위한 목표로 언어치료를 받을 때 주의집중에 어려움이 있거나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연습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 이들은 아동 스스로 자신의 발음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정말 주의집중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더 세부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도 권해드리는 편이다.)
#5. 아이들의 시선으로, 마음을 나누는 시기가 오기를.
이 책은 출근하는 기관, 내 치료실 책꽂이에 잘 꽂혀 있다. 초기상담, 평가 이후 몇 회기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도 함께 살펴보다가,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 읽어주기 위해.
다가오는 방학은 기간은 짧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권의 그림책으로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
이제는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활동을 주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림책 활동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단순히, 사회적 상황을 나타내거나 감정을 나타낸 그림 카드로 아이들의 마음 이야기를 유도했을 때보다는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읽어주는 '내'가 마음이 깨끗해지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그런 시간이기에.가정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시간이기에.